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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Interview

Writer. 편집실 / Photo. 이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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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라고 느낄 때, 돌아보면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고 있다

 

태원준 여행작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무릎이 탁 풀릴 만큼 힘들 때 우리는 끝을 생각한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 진부할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2막이 열리는 계기가 된다. 몰랐던 자신을 알게 되는 동기가 된다. 바닥을 차고 일어나 돌아보자. 광활한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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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 발을 딛고 새로운 나를

만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퇴사, 이별 하다못해 자잘한 물건을 버리는 데까지 우리는 수많은 끝을 경험한다. 이후에는 새로운 일, 새 인연, 새 물건이라는 기쁨이 시작되지만, 그 사이에 미래를 향한 불안과 걱정은 끝과 시작을 망설이게 만든다. 태원준 작가는 말한다. “가장 소중한 것들에서 이런 망설임의 답을 찾을 수 있어요.”

태원준 작가는 어려서부터 여행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푼돈이 생기면 국내여행을, 목돈이 모이면 세계여행을 떠나 삶을 다채롭게 물들였다. 현재 그는 세상을 여행하며 찍고 쓴 사진과 글로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만들며 여행 작가로서의 인생을 산다. 여행이 일이 되어 서글픈 게 아니라, 일이 여행이 되어 행복하다는 태원준 작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건 뜻밖의 아픔으로부터였다. 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짧은 간격을 두고 돌아가신 것. 태 작가 본인도 휘청일 만큼 큰 슬픔이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남편과 어머니를 한꺼번에 잃고 실의에 빠지셨다. 어머니의 눈물을 본 태 작가는 어머니의 환갑잔치 대신 세계 배낭여행을 계획한다. ‘슬픔을 위로하는 방법’이라기엔 조금 색다르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는 위로만큼 효과적인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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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30년간 운영하던 식당을, 태 작가는 일을 그만두고 여행준비에 돌입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하는 데에는 언제나 번민이 따르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무엇이 가장 소중한 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와요. 제게는 그 답이 가족이었죠. 저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을 알고 있으니 이걸 어머니에게도 알려드릴 수 있다면,여행을 통해 어머니가 다시 웃으실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물론 답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경제적인 안정도, 일상의 평온도 망가질 수 있기에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끝과 시작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기에 그는 여행으로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훌쩍 떠나세요.’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 여행 작가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을 알려주며 실질적인 방안을 찾도록 한다고.

 

 

새로운 인연은 숨어있던

나를 세상 밖으로 꺼낸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잊고 산다. 이름 석 자도, 나이도,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도. 늘 그 자리에 있고 잊을 리 없다고 생각한 것들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가 아주 낯선 곳에서 비집고 나온다.

태 작가는 혹 환갑의 어머니가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잘 적응을 하지 못할까, 힘드시면 언제든 돌아가자는 약속을 한 후 배낭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어머니는 여행 내내 완벽한 적응력은 물론, 연신 즐겁고 행복하다는 말로 태 작가를 놀라게 했다고.

“모든 여행자들이 저희 어머니를 보고 대단하다며 칭송을 했어요. 은퇴할 나이쯤 되면 대부분 럭셔리여행, 패키지여행을 하시는데 저희는 달랑 배낭만 메고 다니는 거잖아요. 그런 관심과 칭찬만으로도 어머니는 으쓱해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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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 작가는 “어머니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드리려 시작한 여행이었는데 오히려 제가 어머니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게 됐다.”며 여러 일화를 풀어놓았다.

지난 30여 년간 누구 엄마, 아주머니로 불렸던 어머니는 잊고 살았던 이름을 물어오는 외국인들이 신기했다고 한다. 오래간 듣지 못한 당신의 이름, ‘한동익’이 불릴 때마다 무척이나 기뻤다고. 또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무를 때면 어린 여행자들이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가 생각나는지, 태 작가의 어머니를 Mom, Mother라고 부르며 곧잘 따랐다. 어머니는 전 세계 곳곳에 아들딸이 생기는 기분이라며 기뻐하셨다고. 어머니는 이름을 되찾고, 어린 여행자들은 어머니의 소중함을 깨달은 순간. 태 작가는 “여행의 묘미가 이런 거 아닐까요? 감정을 교류하면서 서로는 물론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 것.”이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만남과 헤어짐은 있는 힘껏

행복을 나누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모자는 새로운 문화를 더 깊숙이 알기 위해 ‘카우치 서핑’을 선택했다. 소파(Couch)와 파도타기(Surfing)의 합성어인 ‘카우치 서핑’은 남의 집 소파를 타고 파도타기를 하며 여행을 한다는 의미를 가진 소셜 네트워킹 커뮤니티다. 현지인의 집에서 머물기 때문에 로컬문화를 이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다. 숙박은 무료이나 서로의 문화를 나눈다는 취지에서 배려와 신뢰를 기반으로 이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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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 작가는 가장 기억에 남는 카우치 호스트로 크로아티아의 ‘아나’를 꼽았다. 아나는 첫 만남에서부터 모자를 힘껏 끌어안고는 집으로 데려가 갓 지은 쌀밥을 대접했다. 게다가 강남 스타일 춤까지 선보이며 어머니의 마음을 홀딱 빼앗아 며느릿감으로 낙점되었다고. “아나는 궁핍한 여행자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아는 호스트였어요. 출근하기 전에 늘 저희의 아침과 점심 도시락까지 챙겨줬죠. 여행에 대한 정보도 많이 알려줬고요.” 금세 친구가 된 세 사람은 크로아티아 곳곳을 누볐고 예정된 기간보다 이틀이나 더 머물 만큼 각별해졌다고 한다. 이들이 헤어지던 날, 어머니는 첫날 아나가 그랬듯 그녀를 꼭 껴안았고 아나와의 만남은 두 사람의 마음속에 진득하게 남았다. 아나도 마찬가지였을까? 얼마 뒤 아나는 본인의 어머니를 모시고 한국을 찾아왔다! 아나 외에도 스톡홀름에서 만난 에릭, 체코에서 만난 토마스도 한국에 다녀갔다고.

태 작가와 어머니는 새로운 방법의 네트워크로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과 몇 번이고 인연을 맺고 헤어졌다. 하지만 그들이 나눈 이별의 포옹은 서로의 가슴속에 여운을 밀어 넣어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했다. 끝은 시작을 낳고 또 다른 시작을 데려온다는 것, 태원준 작가가 믿는 여행의 힘이다.

 

 

다시 시작하는 것, 더는 두려워 말자.

나에겐 나와 우리가 있다

 

10개월의 유라시아 여행을 끝내고 2년 뒤, 두 사람은 남미로 떠났다. 태원준 작가는 “세상의 절반을 보여드렸으니, 나머지 반도 보여드리기로 했어요. 사실 유럽보다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었지만 지난 여행들에서의 경험과 어머니의 바람 덕에 200일하고 2주간이나 남미를 돌아볼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여행기는 태원준 작가의 손에서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 ‘엄마, 내친김에 남미까지!’ 두 권의 책으로 탄생했고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 독자는 이들의 여행기 덕에 몇 년간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냈던 어머니와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으며, 여행 전날 서로를 끌어안고 울며 오해를 풀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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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의 여행은 작가의 삶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어주었다. 사진 속 행복한 모자지간의 표정 속에 많은 것들이 담겨 있는 듯하다.

 

그의 어머니 ‘한동익’ 여사 역시 각종 매체와 인터뷰는 물론 라디오에도 출연하며 인생 제2막을 즐기고 있다고(물론 여행도 꾸준히 하고 계시다). 이들이 슬픔의 끝에서 내디딘 새로운 시작은 커다란 세계를 보게 했고 전에 없던 삶을 살게 했다.

우리에게 ‘끝’은 ‘결국은 해피엔딩’, ‘내친김에 새로운 나까지’ 발견할 다리다.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태원준 작가와 한동익 여사가 보여주었듯, 우리에겐 아직 긴 시간이 남아있다. 여행이 아니어도, 대단한 변화가 아니어도 괜찮다. 잡동사니 하나를 버리고 마음에 드는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좋다. 그 또한 나의 취향을 알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