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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원재훈 _<고독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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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 아닌 고독,

비로소 나를 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알게 된 진실이 있다. 고독한 사람이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외롭지 않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면, 고독은 행복의 열쇠와 같다고 단언할 수 있다. 복잡한 일과 인간관계에 지쳤다면 우리는 잠시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번잡한 상태에서 벗어나 고독한 시간을 갖게 되면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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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 필요한 이유

 

혼자 있는 시간은 참 풍요롭다. 그것은 자신을 뒤돌아 보게 하고, 뭔가 뒤틀린 사회적 관계를 조망하게 하는 내면의 질서를 부여한다. 온통 뒤죽박죽인 상태에서 상대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 허겁지겁 노력하는 모습처럼 측은한 것이 없다. 차라리 그땐 모든 상태를 스톱시키고 곰곰이 생각해 보자. 외부로 열린 나의 방문을 조용히 닫자. 이렇게 자신의 방문을 닫는 상태를 ‘고독’이라고 부른다. 밖에서 누군가 나의 방문을 걸어 잠근다면 그것은 ‘고립’이다.

우리가 고독에 대해 오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혼자 있으므로 외로울 것’이라는 선입견이다. 이러한 상태는 고립감을 느끼는 것이다. 고독은 고립된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조망하는 독립된 상태이다.

고독한 상태에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삶을 조망하면 내가 보인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보인다. 주위에서는 변방이라고 하는 바로 내가 서 있는 여기가 우주의 중심이고, 삶의 중심임을 알게 된다. 우리에게 고독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독을 통해 삶의 중심을 잡고 자신에게 다가간다. 극적인 예로 싯타르타를 들 수 있다. 싯타르타는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인도의 왕자로 태어난 그를 언제나 산해진미와 현자와 미녀들이 감싸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것이 고행이다. 즉 고통스럽지만, 고독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때론 고립되고 때론 상처받고 때론 목숨까지 위험한 고행을 마치고 드디어 어떤 경지에 이르렀을 때, 그는 비로소 고독한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에게 나아가고 말하고 행동한다. 더 이상 그는 홀로 지내지 않는다. 제자와 중생들을 위해 큰 걸음을 내딛는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누구인지, 어떤 상태인지, 어떤 말을 할 수 있는지 잘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고독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수도승의 고행처럼 고통스럽지도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전 인류를 구원할 사명을 완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나와 내 주위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고 아름답기를 바랄 따름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왜 그럴까, 그것은 고독을 두려워하고 고립감에 빠지기 때문이다. 고독은 거미줄처럼 당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과 연결시키려고 한다. 고립감이 감정의 함정이라면, 고독감은 감정의 길이다.

고독은 또한 자존감을 높여 준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타인을 해하지 않는다. 설령 죽도록 사랑한 사람이 변심했더라도 그를 해하기보다는 그의 행복을 빈다. 왜 그럴까. 자존감은 나를 지키는 감정이고, 이 감정이 충만하면 나와 같은 존재인 타인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 타인과의 관계가 좋은 편이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를 보면 항상 자신감이 있고 사랑스러운데 왜 다른 사람을 만나려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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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창작의 기반, 고독

 

고독이 습관이 되고 존재감이 조금 더 발달하면 위대한 창작으로 이어진다. 고흐를 비롯해 베토벤, 톨스토이나 카프카, 헤밍웨이 등 우리가 아는 많은 위대한 예술가와 작가들은 고독한 사람들이었다. 작곡할 때 베토벤은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방문을 잠그고 절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사흘을 식음을 전폐하고 작곡에 몰두한 적도 있다고 한다. 베토벤에게는 절대 고독이 절대 음악을 만들어내는 큰 힘이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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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의 관계를 철저히 지속하기 위해 평생을 독서와 사색에 고독하게 집중한 카프카. 그의 전기를 쓴 클라우스 바겐바흐는 카프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허다한 20세기 작가들의 전기에 점철되어 있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변화가 카프카의 일생에는 없다. 거주지를 옮기거나 장거리 여행을 한 적도 없고, 흔히 자기 형성의 체험이라고 부르는 것도 없으며, 동료 작가들과의 위대한 만남도 없다.’

카프카는 평생을 아주 작은 골방에서 책을 읽고, 사색하고, 글을 쓰며 살았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이들처럼 극도의 고독 속에 살 수는 없지만, ‘골방’ 하나쯤은 꼭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꼭 눈에 보이는 공간이 아닌 가상의 공간이라도 좋다. 하루에 한 번쯤 아주 잠시라도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나 자신과의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구축할 수 있는, 그리고 나 자신을 응원하고 격려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무엇이든 좋다.

잘 알려진 기업가나 정치인 중에 고독의 가치를 역설하는 사람도 많이 본다. 설령 화려한 사교생활을 했던 사람도, 예를 들어 괴테 같은 사람도 어느 순간에는 고독을 찾기 위해 그들을 떠난다. 그리고 저술한 책이 바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다. 그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성공으로 각광 받고 있을 때 그는 조용히 그의 성을 떠났다. 사교계의 여왕 샤넬 역시 마찬가지였다. 화려한 생활을 하는 이면에 가장 고독한 자신만의 방을 남겨두고 고단한 삶을 견뎠던 것이다.

위대한 작가나 예술가들의 삶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은 누구보다 외로웠고, 가난했으며, 고통받고 살았다. 그 결과물로 위대한 작품을 남겼으니 예술가들의 고독은 지독하게 잔인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 즉 고독한 시간을 가지고 잠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관계를 풍요롭게 하는 비법인 것이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위해 고독한 시간을 영위하듯이, 내 삶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나만의 작업장이 필요하다. 그것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나의 내면에 있는 고독이고, 내 작은 방이거나, 교실이거나, 도서관의 의자에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고독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다만 행복하시라고는 권한다. 사실은 그게 그거다. 나의 고독은 너의 행복이다. 아무리 고독한 사람도 결국 혼자 살 수는 없다. 무인도에 떨어진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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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고독, 풍요로운 시간

 

이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 가끔 나를 바라보는 고독한 시간이 없다면 그것은 정말 지독한 황무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중독 증상에 빠진다. 약물과 술, 욕망과 타락의 중독이다. 중독은 고독을 제일 싫어한다. 고독은 흐리멍텅한 나의 정신을 깨우고, 말 그대로 정신 차리게 하기 때문이다. 맑은 정신으로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것을 선한 것으로 채우고자 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 나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고독이라는 타자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고독은 조용히 손길을 내민다. 그리고 정신을 맑게 하고 어떤 선택을 하게 한다. 너 자신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노예처럼 살 것인가. 욕망의 아수라장 속으로 뛰어들 것인가, 고요한 행복을 누릴 것인가?

 


BOOK INFO

 

고독의 힘

저자 원재훈

출판사 홍익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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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것을 낙오, 또는 패배로 생각한다면, 그래서 세상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려고 아등바등한다면, 우리 삶에서 고독이 갖는 진짜 의미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나를 나로서 만나고 바라볼 수 있는, 그럼으로서 인생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고독의 진정한 가치와 힘에 대해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