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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Interview

Writer. 편집실 / Photo. 이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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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에 물을 주면

어느새 내가 성큼 자라 있다

 

《하루의 취향》 김민철 작가

 

모두의 일상은 소소하지만 고유한 취향으로 이뤄져 있다. 김민철 작가도 그렇다. 에세이집 《하루의 취향》의 시작에서 그는 스스로에게 영화 ‘라라랜드’의 여주인공이 입었던, 등 파인 드레스를 선물하려고 한다. 나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키워나가는 일은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일과 같다고 여기기 때문에 절대 소홀할 수가 없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묻고 답하다 보면 나를 잘 알게 된다. 그와 ‘취향 수다’를 나누었다.

 

 

촌스러워도 괜찮아요,

소중한 취향이잖아요

 

김민철 작가는 ‘생각대로 T’, ‘사람을 향합니다’, ‘혁신을 혁신하다’ 등 전국민이 기억하는 광고 제작에 참여한 베테랑 카피라이터다. 광고업계만큼 에너제틱하고 스피디한 업계도 없을 텐데, 그는 일하는 틈틈이 자신의 일상과 일상 속 깨달음을 글로 써왔다. 카피라이터답게, 그는 일상의 모든 것을 눈과 몸과 마음으로 포착해 진실하고 담박하게 글로 써낸다. 그가 말하는 ‘취향’이란 마음이 가는 방향을 뜻한다. 국어사전에도 취향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이라 쓰여 있다.

흔히 ‘취향’하면 굉장히 독특하고 고유한 것을 떠올린다. 고급스럽거나 남들도 따라 하고 싶을 정도라야 취향이라는 오해도 있다. 하지만 그는 ‘조금 촌스럽고 남들이 별로라고 할 수도 있고 내일이면 변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라도 모두 ‘취향’이라고 부른다. 취향도 하루하루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의 취향, 하루의 취향은 소중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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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취향’이란 건 완벽할 수가 없어요. 후회할 수도 있고, 취향 자체가 변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마음이란 게 원래 변하는 거잖아요. 우리 바깥의 세상은 온갖 불확실한 것투성이에요. 불확실함이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데, 그 불안 속에서 가장 확실하게 기댈 수 있는 건 ‘나’ 뿐이죠. 내 마음이 향하는 것들로 완성한 ‘나만의 취향 지도’가 필요한 이유예요. 그 취향 지도를 따라가면 쉽게 행복에 도착할 수 있어요.”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그의 마음이 가는 방향도 대수롭지 않다. 손맛이 기막힌 육전과 갓김치를 파는 동네 맥줏집, 한때 열중하던 짝사랑, 직장에서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 사람에 대한 마음, 탈춤 동아리 백정 역할에 홀딱 빠졌던 시절 그리고 음악과 여행, 책 같은 취향까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따라가다 보면, 결국 그 마음이 이끄는 가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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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별스럽지 않은 취향과 내 마음이 하루의 에너지가 돼요. 그런 취향이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들죠. 타인이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절대 평가하지 않아요. 내 취향도 남의 취향도 그냥 그대로 ‘인정’하는 거예요.”

독자들은 ‘내 취향이 좀 촌스러워 보일까 봐, 남을 불편하게 할까 봐, 웃긴 사람으로 보일까 봐’ 드러내지 않았던 과거를 떠올리며 앞다투어 북 리뷰를 쏟아냈다. 취향이란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니까, 그 취향을 드러내면 남들이 어떻게 볼까 염려했던 마음들이다. SNS 시대에 맞게 취향도 근사하고 새롭고 그럴듯해야 한다는 강박도 흔하다. 그의 글을 보며 용기를 내보자. ‘빨래하는 법’을 재치 있게 풀어낸 글을 읽다 보면, 자신감이 생긴다. 나만의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법, 수박 자르는 법, 더운 여름에 기운 내는 법도 공개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데

취향이 무엇보다 효과적이다

 

김민철 작가는 책의 원고를 써가는 동안 ‘취향’의 뜻을 나름대로 정의해 나갔다.

“그때그때 마음에 들어오는, 마음이 향하는 것들을 글로 썼어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취향이더라고요. 패션, 독서 등 물성을 지닌 것을 넘어서 일상의 모든 순간이요. 일하는 방식조차 취향의 영역이에요. 자기 자신을 아는 데는 취향을 들여다보는 게 무엇보다 효과적이고요.”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야근이 이어지면 취향을 돌볼 시간이 없다고 느낀다. 그런데 김민철 작가는 직장에서의 시간에도 취향이 있다고 말한다.

“매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놓는 사람이 카피라이터라는 고정관념이 있죠. 그런데 저는 짧은 한 문장으로 뭔가를 표현하는 것이 그렇게 즐겁지가 않았어요. 제가 가장 신나서 일할 때는 여러 명이 하나의 주제로 일하는 과정 자체더라고요. 책임지고 프리젠테이션 하는 것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팀장 역할을 좋아했어요. 프리랜서가 되면 큰일 나는 거죠. 그게 제 ‘일 취향’이에요. 회사에 계속 다녀야 하는 거죠(웃음).”

일만큼 중요한 게 인간관계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자신이 다르게 구성된다. 사람에 대한 취향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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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대개 상황에 의해 강제로 주어져요. 직장 동료라거나 배우자의 가족이라거나. 저는 사람 취향이 그렇게 폭넓은 사람이 못 돼요. ‘함께 보낸 시간’이 가장 중요해서 오래된 친구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사람을 자주 만나지도 않아요. 그러다 보니 제 취향에 꼭 맞는 사람만 만나게 되고요. 사실 거의 남편과 술 마시죠.”

책에는 남편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사랑만큼 자신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또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삶의 거의 모든 것을 함께 경험하기에 공유하는 취향이 늘어난다. 함께 사는 집의 취향을 만들면서 남편이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남편이 가장 잘 알잖아요. 저는 원하는 게 굉장히 뚜렷하고 많아요. 한번은 집 인테리어를 할 때 견적이 너무 많이 나와 망설였어요. 합당한 액수지만 저희 부부에게는 무리였죠. 남편에서 물으니 ‘그렇게 하면 당신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라더라고요.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마음에 안 들지만 대충 타협하면 사는 내내 계속 생각날 게 뻔하잖아요. 남편은 그걸 알고, 제 취향을 존중해 준 거죠.”

사랑에 대한 취향은 집에 대한 취향으로 뻗어간다. 당시 그의 남편은 학생이었고, 주변 사람들은 둘의 경제적 차이를 의아해했다. 그래도 남편은 아내의 취향을 인정했다. 김민철 작가는 남편을 선택한 것처럼 함께 살 집의 모양도 선택했다. ‘과도한 대출을 받아서 비싼 동네에 비싼 집을 사고 그게 오를 거라 기대하며 하루하루 빚을 갚으며 지금의 행복을 유예하는 삶에 대한 거부. 우리 깜냥의 대출을 받아서 오를 거라는 기대도 없이 나중에 부자가 될 거라는 희망도 없이 지금 잘 꾸며놓고 지금 잘 살겠다는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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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더 많은 모험이 필요하다

 

그의 메시지는 심플했다. 그리고 아주 선명했다. 아무도 상관할 필요 없는, 누구의 허락 받을 필요도 없는 내 마음의 방향을 따라가자. 웃기고 볼품없고 촌스러워도 그게 내 취향이니까. 우리에겐 지극히 개인적인 즐거움으로 가득 찬 각자의 행성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모험이 부족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어’라는 일본 철도청의 카피가 있다. 가로늦게 후회할지라도 도전을 한 번, 가로늦게 깨달음을 얻을지라도 시도를 한 번, 수많은 실패 앞에서도 나는 여전히 ‘가로늦게’를 응원한다. 아직 우리에겐 더 많은 모험이 필요하니까. 우린 더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하니까.”

에세이집의 토대가 된 연재물 ‘가로늦게’의 한 부분이다. 그는 머리를 세게 박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을 응원한다. 인생의 모험들은 조금 늦되더라도, 조금 더디더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 모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당신의 취향이라고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