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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나영웅 _리디북스 매니저/컬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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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나답게 하는

삶의 조각, 취향

 

어릴 적 그 아이는 특별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새파란 색을 지닌 아이였다. 아이는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연한 하늘색이 되어있었다. 아이가 커서 회사에 들어갔다. 사회라는 세탁기에 돌려진 아이는 점점 색깔을 잃어갔다.

어느 순간 아이는 말쑥한 회색 신사가 되어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회색 신사였다. 아이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색상, 취향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앞서 언급한 아이의 불안감과 종종 마주치곤 한다. 삶의 주인공이었던 시절은 어느새 잊히고 색깔 있는 사람을 흠모하는 평범한 회색 인간이 되어버린다. 도대체 우리의 취향은 누구에게 도둑맞은 걸까. 다들 가지고 있던 파랗고 하얗고 빨갛던 색감들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취향은 본래 마음이 동하는 방향 혹은 한 인간의 고유한 행동 양식을 뜻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다 보면 그와 관련된 취미,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런 과정들이 나를 ‘하나의 정체성을 지닌’ 색상으로 물들인다. 이처럼 스스로가 어떤 행동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느냐에 따라 성격, 삶의 양식 나아가 독창적인 영혼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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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은 시대별로 다양하게 해석되어왔다. 17세기 철학자 칸트는 취향을 ‘미를 해석할 수 있는 개인의 안목’으로 간주했다. 18세기 대문호 톨스토이는 ‘취향은 인간의 양식 그 자체’라는 평을 했으며, 19세기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은 남과 나를 구별 짓는 행위’라는 말을 남겼다. 부르디외의 말은 현대사회에서도 계속 언급된다. 사람은 누구나 유일한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남과 나 사이에 취향의 차이를 두고 구별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구별 짓기’란 취향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행위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사회 환경이 사람들의 취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 학자로 유명하다. 프랑스 시민을 상대로 다년간의 조사를 한 결과 개인의 취향이 각 계급의 사회적 환경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는 주장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예를 들면 노동자는 노동자의 취향을 가질 수밖에 없고 상류층은 환경에 의해 상류층의 취향을 계속 물려받는 것이다. 그가 사람들의 기호를 계급 단위로 구분하는 조사를 한 이유는 단순히 사람들의 취향을 고급과 저급으로 재단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의 취향이 스스로의 선택보다 사회 환경에 의해 길들고 있으며 그 취향이 결국 계급적 구별 짓기에 남용되는 것을 깨우치고자 함이다.

 

 

지금, 왜 취향인가?

 

시대에 따라 취향의 정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패러다임은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취향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지금의 취향은 사적이고 개인적이며 나다움을 표현하는 문화다. 이제 부르디외의 취향을 넘어 스스로 취향을 쟁취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취향은 누군가에게 부여받는 바코드가 되어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대중에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 취향, 취향 존중, 취향 저격이라는 키워드의 해시태그는 100만 개가 넘는다. 이토록 취향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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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은 빠르게 우리 사회를 성장시켰다. 물과 흙으로 100년이 걸릴 일을 술과 담배를 든 노동자들이 30년으로 단축시켰다. 이후 도래한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효율화시켰다. 공장의 기계 부품부터 일하는 사람의 시간까지 계산하여 빈틈없이 노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사람의 효율화는 곧 사람의 부품화를 뜻했고 결국 몰취향의 역사가 시작됐다. 효율화라는 명목 아래 상품도 사람도 모두 규격화시켜버린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인구는 점점 축소되어 1인 가구와 자녀가 없는 소가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 말은 즉 개인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계층이 늘어나는 것을 뜻한다. 이들은 사회가 꾸며낸 존중보다는 개인의 존중을 중요시하며 개인의 존중을 위해 타인의 취향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리낌 없이 표출하는 집단이다. 이처럼 스스로 존중받고자 하는 목소리의 연대가 곧 현대의 취향 문화로 번지고 있다. 이는 곧 인권운동과 힙스터 문화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진정한 매력은 내적 취향에서 나온다

 

어느 여행에서 우연히 재즈를 너무도 사랑하는 친구를 만났다. 프라하로 가는 기차 안에서 텀블러에 숨겨진 와인을 나눠 마시며 재즈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한 시간쯤 들은 것 같다. 그 친구는 갑자기 일어나 몸을 들썩이더니 내게 재즈댄스를 가르쳐주었다. 프라하에 도착한 우리는 그 지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재즈바에 가서 함께 여흥을 즐겼다. 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친구는 내게 재즈, 와인, 프라하로 기억된다.

가만히 떠올려 보면 즐거운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을 생각하니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빠졌거나 자신만의 독특한 버릇이 있거나 세상의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채색인 사람보단 어설퍼도 다채로운 색깔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취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기호가 명확하다.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어떤 색의 조합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그 색깔을 얻었는지, 앞으로 어떤 색으로 변해갈지 관심이 생기고 그 관심이 곧 사랑으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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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로 취향을 시작하는 건 매우 간편하고 효율적이다. 손석희 앵커가 차고 있는 카시오를 차는 것만으로도 아나운서의 신뢰라는 상징을 얻는다. 스타벅스 테이크아웃 한 잔으로 자신의 커피 취향을 보여줄 수도 있다. 이처럼 남들에게 보이는 외적인 취향은 브랜드를 소비함으로 채울 수 있지만 내적인 취향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매력은 반감된다. 내적인 취향은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는 경험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에서 채워진다.

어떤 취향을 가져야 매력적일까? 좋은 취향이란 무엇일까? 나는 취향에도 마스터키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좋아할 만한 정답으로서의 취향을 고민했다. 남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취향을 입어도 보았지만 그 옷은 내게 불편하고 맞지 않았다. 모두에게 어울리는 기성복 같은 취향은 없다. 오직 나에게 어울리는 취향만 있을 뿐이다. 어울림의 기준을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취향을 짓는 방법

 

취향을 무겁고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면 자신만의 취향을 형성하기 어렵다. 조금 이상해도 조금은 벗어나도 좋은 게 취향의 방향이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다. 최근 위트 있는 B급의 감성이 많은 영역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솔직한 풍자가 사람들이 미처 표현하지 못한 내밀한 취향을 건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취향에 조금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표현되는 취향은 더욱 발전하기 마련이다.

자신만의 취향을 갖기 위해서는 취향의 독립, 탐색 그리고 충돌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들이 곧 경험으로 남아 취향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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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자신에게서 가족문화와 대중문화를 덜어내면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방향의 취향을 품을 수 있다. 새로운 경험을 위해 익숙한 것들에서 벗어나 혼자 무엇을 해보는 시도가 곧 독립이다.

 


 

탐색

우리는 주로 남의 취향을 탐색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나에게 어울리는 것보다 남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에 더 신경쓰기 때문이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아는 게 중요하다. 좋아하는 물건, 좋아하는 분위기, 좋아하는 작품 혹은 작가들을 정리해보고 왜 이들이 좋은지 이유를 생각해보자. 성숙한 취향에는 항상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충돌

취향에 있어 가장 의외성을 갖는 것이 바로 충돌이다. 취향의 충돌은 곧 관계의 충돌을 의미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취향을 나누고 또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서로의 취향을 더 깊게 만들기도 한다. 조금 낯설어도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곳을 찾아가자.

 

 

취향의 형성은 일상의 행복한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양식을 만드는 과정과 같다. 행복했던 일상을 캔버스에 옮겨보면 생각보다 쉽게 자신의 취향을 그려볼 수 있다.

“한 작가는 따듯한 햇살과 잉크가 스치는 노트의 촉감 그리고 하얀 셔츠와 커피 향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는 방 하나를 서재로 꾸민다. 커피 머신을 책상 가까이에 두었으며 글을 쓸 때는 항상 하얀 셔츠를 입는다. 글을 쓰는 시간이 오면 그는 즐겨 쓰는 노트와 만년필을 들고 그 방에 입장한다.”

이렇게 하나의 양식을 완성했다면 또 다른 조각들을 모아보자. 그 조각을 모으는 데 경험이 필요하다면 경험을 모으고 시간이 필요하다면 시간을 모아 양식을 천천히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빠르게 취향을 취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삶의 양식을 하나씩 갖춰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양식들이 결국 당신이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색깔이 되고 신호가 된다. 무언가로 표현되는 사람은 언제나 매력있다.

 

 

BOOK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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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취향

저자 김민철

출판사 북라이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취향(趣向). 고상하고 우아하지 않아도 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즐거움인 취향은 수많은 실패와 시도 끝에 생겨나는 나만의 결과물이다. 취향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와 마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