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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김기범 _<로드테스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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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도
컬러를 입는다

 

여명기의 자동차 컬러는 단조로웠다.

20세기 초, 포드 모델 T는 검은색으로만 나왔다. 1920년대 모터스포츠를 계기로, 자동차는 다양한 컬러로 단장하기 시작했다. 시대마다 유행하는 컬러는 달랐다. 오늘날 가장 인기 끄는 컬러는 흰색이다. 자동차 제조사는 신차를 상징할 컬러를 고르고 칠하는데 남다른 공을 들인다. 첫인상을 좌우할 요소인 까닭이다.

 

 

국내외 상관없이
무채색 계열이 인기

 

포드 모델 T는 자동차 대량생산의 물꼬를 튼 주역이다. 당시 모델 T는 검은색 한 가지로만 나왔다. 이 회사의 창업자 헨리 포드는 모델 T와 관련해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은 원하는 무슨 색이든 가질 수 있어요. 그게 검정이라면.” 포드가 모델 T를 검은색으로만 만든 덴 이유가 있다. 바로 효율 때문이다. 생산 공정이 간단하고 건조마저 빨라서다.

반면 오늘날엔 자동차를 살 때 다양한 컬러를 고를 수 있다. 글로벌 자동차 페인트 기업 ‘엑솔타(AXALTA, 이전의 듀폰)’의 ‘세계 자동차 컬러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2016년 1위는 37%를 차지한 흰색이었다. 세계 최대의 단일 자동차 시장인 중국은 무려 57%의 소비자가 ‘흰색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같은 해 지구촌의 두 번째 인기 컬러는 은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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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는 컬러로 개성을 표현한다. 사진 속 노랑 같은 원색은 화려하지만 의외로 소비자가 선택하는 비율은 높지 않다. 지난해 기준, 국내외에서 가장 인기를 끈 컬러는 흰색이었다


국내 소비자의 선호도 또한 비슷하다. 2016년 최고의 인기 컬러는 흰색이었다. 비율은 33%로, 석 대 중 한 대꼴이었다. 이후 순위도 회색(19%), 검은색(16%), 은색(12%) 등 무채색 계열이 휩쓸었다. 그런데 파랑(8%), 빨강(7%), 갈색·베이지(3%), 노랑·금색(1%) 등 선명한 색도 늘고 있다. 특히 2013년에 4%였던 파랑은 3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자동차가 컬러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모터스포츠였다. 1923년 프랑스에서 막을 올린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가 좋은 예다. 컬러는 경주차 국적을 구분할 수단이었다. 프랑스의 부가티는 파랑, 이태리의 알파로메오는 빨강, 영국의 벤틀리는 초록으로 칠했다. 독일의 벤츠는 빠듯한 무게 규정을 맞추기 위해 도장을 모두 벗겨내 ‘실버애로우’란 애칭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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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산업의 초창기엔 일일이 수작업으로 칠했다. 오늘날도 소량생산하는 몇몇 차종은 로봇대신 사람이 칠한다. 자동화를 하기엔 채산성이 맞지 않아서다

 

이후 1950년대엔 미국을 중심으로 밝고 원색적인 컬러가 인기를 끌었다. 머슬카와 포니카가 나오기 시작한 1960년대엔 빨강과 골드메탈릭 컬러가 관심을 끌었다.엑솔타는 해마다 컬러 디자이너와 제품 전문가를 동원해 ‘올해의 자동차 색상’도 선정한다. 2015년엔 ‘레디언트 레드’, 지난해엔 ‘브릴리언트 블루’, 올해는 ‘갈란트 그레이’가 이름을 올렸다.

 

 

컬러 공장은 자동차 회사의
1급 보안시설

 

자동차 회사엔 외부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시설이 있다. 연구개발센터가 대표적이다. 디자인 센터 역시 여간해선 빗장을 여는 법이 없다. 그런데 공장에도 그런 시설이 존재한다. 바로 차체에 색을 입히는 페인트 공정이다. 보안상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도장 작업의 특성상 미세한 먼지조차 허용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일반인은 실제로 볼 기회가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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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척을 마친 차체는 전착 도장을 거친다. 도료 용액 속에 차체를 담근 뒤 전기를 흘리면 도료입자가 차체에 고르게 들러붙는다

 

자동차는 여러 단계로 나눠 칠한다. 시작은 전처리다. 프레스와 용접을 통해 완성한 차체에 색을 입히기 전 표면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인산 아연 피막을 입히는 공정이다. 차체를 특수용액에 담갔다 물로 씻어내면서 진행한다. 이 과정을 마친 차체는 전착 도장에 나선다. 차체를 도료 용액 속에 풍덩 담근 뒤 전기를 흘리면 도료 입자가 표면에 고르게 달라붙는다.
그 다음엔 금속 패널끼리 맞닿은 부위를 ‘실런트’로 마감한다. 보통 중고차 살 때 수리 흔적을 파악하기 위해 살피는 부위다. 주행 중 돌이 튀어 손상 입기 쉬운 차체 아래쪽도 꼼꼼하게 코팅한다. 이제 차체에 중도 페인트를 칠한다. 원래 입힐 페인트가 잘 달라붙게 해주고 부식도 막기 위한 중간 공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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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차체에 중도 페인트를 칠한 뒤 고객이 주문한 컬러를 입힌다. 대부분의 대량생산 공장에서 이 공정은 자동화한 상태다. 여러 개의 로봇 팔이 현란하게 차체 곳곳을 오가며 꼼꼼하게 칠한다


마지막은 상도 공정이다. 양쪽에 늘어선 로봇 여러 대가 주문 받은 컬러로 차체를 칠한다. 간혹 일반인이 도장 공정을 견학하는 경우 대개 이 장면을 보게 된다. 로봇이 문을 여닫아 가며 관절을 꺾고 팔목을 180° 돌려 페인트칠하는 모습은 한 편의 공연을 연상시킬 만큼 현란하다. 이렇게 색을 입힌 뒤엔 광택용 투명페인트를 한 번 더 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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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러 도장을 마치면 마지막으로 광택을 내기 위해 투명 페인트를 칠한다. 그리고 뜨거운 오븐에서 굽는다


보통 승용차 한 대를 칠할 때 20L의 페인트를 쓰는데, 이 중 12L만 차체 표면에 남는다. 앞서 소개한 내용과 다른 경우도 있다. 가령 버스는 컬러를 띠는 베이스와 투명한 광택용 도료를 하나로 섞어 칠한다. 작업 편의를 위해서다. 또한, 소량생산 자동차는 도장에 로봇을 쓰지 않기도 한다. 람보르기니가 좋은 예로, 장인 둘이 6시간 이상 스프레이 건으로 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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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도장을 마치면 꼼꼼히 흠집을 살핀다. 특수장비를 동원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과정은 숙련된 직원의 몫이다

 

 

고민 끝에 고르는
신차의 대표 컬러

 

한편, 신차 컬러를 개발하는 과정은 복잡하고 수많은 요구 조건이 뒤따른다. 물론 자동차 제조사의 컬러 디자인 팀에겐 이 같은 도전이 곧 일상이다. 컬러 디자이너들은 신차 개발에 맞춰 컬러를 고르기 시작한다. 실물이 없으니 알루미늄 패널에 칠해 컬러 샘플을 만든다. 그리고 실내와 실외, 자연광과 인공광, 그늘 등 다양한 조건에서 각각의 샘플을 살핀다. 

나아가 같은 하루 중 다른 시간대, 때론 일 년 중 다른 계절마다 같은 작업을 반복해 차이를 확인한다. 때때로 이들은 패널을 구부려가며 차체 표면에 칠했을 때의 느낌을 연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 개의 컬러를 결정하는 작업은 어렵다. 눈부신 여름 아침과 조명 드리운 실내, 짙은 그늘에서의 색감이 제각각인 까닭이다. 따라서 최소 2년이 걸린다.
“계절이나 몸의 컨디션, 심리 상태에 따라 컬러가 주는 느낌이 달라질 수 있어요.”
렉서스 컬러 디자이너 스즈키 메구미의 설명이다. 이처럼 색을 받아들이는 과정엔 이성으로 좌우하기 힘든 본능도 개입한다. 게다가 속칭 ‘끝내주는 컬러’에 대한 사전적 정의 또한 없다. 각 제조사는 신차를 선보일 때 대표 컬러를 앞세운다. 렉서스 NX의 경우 ‘소닉 쿼츠’였다. 햇볕 아래 반짝이고 그늘에선 숨죽이는 눈의 흰색을 표현하기 위해 일반 자동차 도장보다 두 겹 많은 5겹으로 칠했다. 맨 위의 가장 얇은 도장은 화강암을 이룬 광물 중 하나인 ‘돌비늘’을 품었다. 그 다음 층엔 미세한 진주 조각을 넣었다. 그리고 맨 밑에 바탕을 이룰 흰색을 두껍게 칠한다. 그 결과 흰색을 기반으로, 두 개 층의 미세한 입자가 화려하게 빛을 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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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자동차의 티볼리 아머 기어 에디션(Gear Edition)


최근엔 컬러와 데칼로 개성을 강조할 수 있는 신차도 나왔다. 쌍용자동차의 티볼리 아머 기어 에디션(Gear Edition)이 대표적이다. 차체는 8가지, 사이드미러는 9가지, 실내는 2가지 컬러 가운데 고를 수 있다. 나아가 아웃사이드미러, 리어 LED 윙로고 엠블럼, 도어스 팟램프, 블랙휠, 루프컬러, 데칼 등 풍부한 전용 아이템의 조합을 통해 수십만 가지 서로 다른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나만의 차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셈이다. 헨리 포드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