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logo

닫기

모바일메뉴

logoSSANGYONG

Special Theme 3

writer. 김기범 _<로드테스트> 편집장

21.jpg

 

디지털로 구현한
자동차의 아날로그 감성

 

디지털이 아날로그 기술을 압도하는 시대다. 가령 자동차 실내에서 손으로 꾹 누르거나 조작하는 물리적 스위치가 점점 사라져가는 중이다. 그럴듯한 가상의 엔진음을 스피커로 틀어 운전자의 흥을 북돋우기도 한다. 하지만 신기술은 자칫 거부감을 자극할 수 있다. 따라서 자동차 업계는 디지털 기술로 익숙하고 정겨운 아날로그 감성을 부각시킬 방법을 고민 중이다.

 

 

스위치 꿀떡 삼킨
디스플레이

 

“누가 먹물이라도 쏟았나?” 최근 랜드로버 코리아가 국내에 출시한 레인지로버 벨라의 실내에 들어서면 이 생각이 번쩍 든다. 계기판과 센터페시아가 피아노 뚜껑처럼 새카만 까닭이다. 시동 버튼을 누르면 그제야 검정 바탕이 정교한 총천연색 그래픽으로 바뀐다. 계기판 또한 실제 바늘과 눈금, 숫자가 전혀 없는 100% 디지털 환영(幻影)으로 채웠다.

 

23.jpg

▲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벨라의 실내. 센터페시아에 다이얼 스위치 딱 세 개만 남겼다. 시동을 걸면 새카만 부분이 화려한 그래픽으로 물든다


자동차에서 버튼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한때 스위치는 첨단의 상징이었다. 1980년대 소니의 고급 TV는 스위치가 하도 많아 리모컨을 2층으로 나눴다. 1990년대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는 앞 좌석에서 누를 수 있는 스위치만 100개가 넘었다. 기능을 과시하기 위해 스위치를 늘리면서 각각의 크기는 깨알같이 줄었다. 때문에 운전 중 조작이 쉽지 않았다.
이젠 반대다. 최신 자동차일수록 스위치를 없애는 추세다. 그 빈자리를 디스플레이가 삼키고 있다. UI(User Interface)로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아이디어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나 E-클래스가 대표적이다. 계기판에서 센터페시아에 걸쳐 12.3인치 디스플레이 두 개를 나란히 붙였다. 증권사 직원 책상처럼 모니터로 에워싼 느낌이 왠지 낯설면서도 싫진 않다. 

디지털 디스플레이의 장점은 여러 가지다. 우선 기능과 취향에 따라 계기판 구성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이를테면 계기판 전체를 내비게이션 지도로 채울 수 있다. 이때 속도와 엔진회전수 등은 한쪽 구석에 조그맣게 띄운다. 아울러 반응이 빠르고 정밀하다. 또한, 처음 개발이 어렵지 일단 만들고 나면 브랜드 내 여러 차종에 두루 쓸 수 있다.

 

24.jpg

▲ 디지털 계기판에 반짝이는 실제 크롬 띠를 둘러 멋을 낸 재규어 XJ의 계기판


디지털 기술이 처음부터 완벽하진 않았다. 디지털 계기판을 일찍이 도입한 랜드로버의 일부 차종은 간혹 가상의 바늘 움직임이 뚝뚝 끊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문제를 해결했다. 나아가 디지털 기술로 아날로그 감성을 실제보다 정교하게 구현하기도 한다. 재규어는 XJ의 전자식 계기판이 좋은 예다. 반짝이는 크롬 띠를 둘러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을 꿈꿨다.

 

 

시행착오 겪어 진화한
통합제어장치

 

자동차 실내의 디스플레이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는 터치 스크린. 눈으로 확인하는 행위와 기능 조작을 하나로 합친 개념이다. 터치스크린을 극단적으로 쓴 주인공은 테슬라다. 모델 S의 센터페시아를 화끈한 크기의 17인치 터치스크린으로 덮었다. 게다가 가로가 아닌 세로로 얹었다. 크기나 레이아웃 모두 기존 방식을 파괴한 혁신이었다.
두 번째는 디스플레이와 별도로 조작장치를 마련한 경우다. 보통 ‘통합제어장치’라고 부르는데, 이 분야의 선구자는 BMW다. 2001년 7시리즈에 각 스위치의 기능을 녹여 넣은 ‘i-드라이브(Drive)’를 도입했다. 다이얼을 밀고 당기거나 비틀고 눌러 해당 메뉴를 고르고 선택하는 ‘조그셔틀’의 개념이었다. 영상 편집하는 방송기기에서 주로 쓰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시행착오도 만만치 않았다. 워낙 많은 기능을 통합하다 보니 i-드라이브가 깨알 같은 스위치 못지않게 쓰기 어려웠다. 때문에 고객과 언론의 불만이 줄을 이었다. 이후 BMW는 꾸준히 개선을 거듭했다. 이후 아우디의 ‘멀티미디어 인터페이스(MMI)’, 메르세데스-벤츠의 ‘커맨드(COMAND)’ 등 이름만 다를 뿐 비슷한 개념의 장비가 등장했다.

하지만 어떤 브랜드의 통합제어장치든 아직은 종종 불편하다. 가령 예전엔 시트 열선을 켜고 싶을 때 해당 스위치만 누르면 끝이었다. 반면 통합제어장치는 모니터를 보며 몇 단계 거쳐 기능을 찾아 헤매야 한다. 운전하면서 사소한 기능 하나를 쓰기 위해 목숨 거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기능과 조작을 일대일로 짝지은 기존 스위치가 낫다.

 

25.jpg

▲ 렉서스는 통합제어장치를 누구나 익숙한 마우스처럼 만들었다. 모양뿐 아니라 조작법 역시 비슷하다. 디지털로 익숙한 아날로그 감성을 구현한 사례다


렉서스는 2008년 ‘리모트 터치 컨트롤’을 선보였다. 이 장치는 디지털 제어방식을 쓰되 누구나 익숙한 마우스 조작방식을 차용했다. 손바닥으로 구조물을 감싸 쥐고, 검지로 조이스틱을 움직여 모니터 속 커서를 움직였다. 커서가 해당 메뉴를 건들면 조이스틱에 저항을 준다. 따라서 운전하며 곁눈질로 쓰기 좋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방식의 절충안인 셈이다.

 

 

아날로그 감성 살린
디지털 조작방식

 

일부 자동차 제조사는 특정 기능을 기존 아날로그 스위치의 몫으로 남겨놓기도 한다. 비상등이나 온도조절장치가 대표적이다. 디지털 기술로 전통적 스위치를 흉내 내기도 한다. 재규어 XJ의 대시보드 글러브박스 스위치가 좋은 예다. 손가락으로 누르는 방식인데, 실제 접촉할 필요는 없다. 근접센서가 손가락을 인식해 전동식으로 잠금을 풀기 때문이다.
링컨 MKZ는 뒷좌석 조명 스위치를 천장 마감재 안쪽에 숨겼다. 그리고 위치를 표시하기 위한 점만 찍어 놨다. 점을 살짝 건들면 안에 숨긴 LED 조명이 마감재를 뚫고 불을 밝힌다. 물론 이 같은 방식에도 단점이 있다. 바로 오작동이다. 인식률이 기대만 못 하거나 너무 민감해 원치 않는 상황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슬그머니 기능을 없애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실제 물리적 연결을 없앤 디지털 방식은 빠르게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이른바 ‘바이 와이어(By wire)’ 기술인데, 기계적 연결 없이 전기 신호로 작동을 이끈다. 장점은 다양하다. 일단 관련 부품의 개수나 무게, 부피를 줄이기 좋다. 나아가 제어도 한층 정교하다. 그래서 궁극엔 연비와 성능을 개선하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 같은 디지털 조작방식은 이미 자동차 깊숙이 뿌리내렸다. 재규어나 랜드로버가 변속레버를 둥그런 다이얼로 대체할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미 바이 와이어 기술은 가속 페달로도 영역을 넓혔다. 과거엔 가속 페달을 밟으면 케이블을 당겨 엔진의 스로틀 밸브를 열었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 전자식이다.
인피니티의 경우 스티어링 휠에도 바이 와이어 기술을 녹여 넣었다. Q50S 하이브리드의 ‘다이렉트 어댑티브 스티어링(DAS)’이 대표적이다.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조작하면 전기 신호를 전달해 앞바퀴의 각도를 꺾는다. 따라서 차가 상황에 따라 조작과 반응을 의도적으로 왜곡할 수 있다. 고장 날 경우를 대비해 물리적으로도 연결해 놓은 것은 물론이다.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디지털 기술

 

오늘날 자동차 관련 기술은 빠르게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따라서 각 자동차 브랜드는 비슷비슷한 기술을 기반으로, 저만의 개성 물씬한 아날로그 감성을 부각시킬 방법을 고민 중이다. 사운드가 대표적이다. 과거 자동차의 소리는 어떻게든 줄여야 하는 ‘공공의 적’이었지만 이제 명확히 구분한다. 부정적 소리는 소음, 긍정적 소리는 사운드로 나눈다.
이를테면 운전자의 흥을 북돋우기 위해 일부러 엔진음을 키우기도 한다. 가령 실내 스피커를 통해 가상의 엔진음을 튼다. 엔진회전수나 가속 페달 밟는 조작을 고려해 음색과 음량을 주물러 사실감을 높인다. 엔진의 역할을 줄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엔진이 아예 없는 전기차가 대중화되면 이 같은 기능에 대한 관심은 더욱 치솟을 전망이다.

 

26.jpg

▲ 디지털 기술은 빠르게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자율주행은 물론 인공지능 기술까지 담은 토요타의 ‘콘셉트-i’가 좋은 예다


이처럼 쉽고 간편한 디지털 사운드가 선보이는 가운데,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는 브랜드도 있다. 바로 포르쉐다. 엔진이 공기를 빨아들이는 통로에 얇은 막을 설치하고, 실내로 이어지는 통로를 냈다. 그러면 급가속 때 엔진이 공기를 세차게 들이마시면, 막이 부르르 떠는 소리가 실내로 울려 퍼진다. 소음 규제를 피하되 오롯이 감성을 자극할 묘안이다.

한편, 인공지능을 본격 도입하면 기존엔 상상도 못 할 아날로그 감성마저 구현할 수 있다. 가령 자동차가 운전자와 교감할 수도 있다. 지난 1월, 토요타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연 CES(소비자가전쇼)에서 선보인 ‘콘셉트-i’가 대표적이다. 운전자의 기분이 우울하다고 판단하면, 실내조명을 화사한 컬러로 바꾸고 평소 좋아하는 음악을 틀며 메시지로 위로를 건넨다.

 

27.jpg

▲ 토요타가 ‘콘셉트-i’에 적용한 인공지능은 운전자의 기분을 파악해 음악이나 조명을 바꾼다. 심지어 메시지로 의사소통도 시도한다. 그 결과 이동수단을 넘어 친구나 비서의 역할마저 해낸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은 역설적으로 아날로그 감성을 강조하고 확장할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동수단의 한계를 넘어, 누구보다 날 이해하는 친구이자 빈틈없는 비서 역할까지 해내는 콘셉트-i가 그 생생한 청사진이다. 참고로, 이 차 이름의 ‘i’는 사랑을 뜻하는 한자애()의 일본식 발음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동차라니,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