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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김기범 _<로드테스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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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자동차를 디자인하다

 

자동차는 움직이는 기계다. 따라서 다양한 소리를 낸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소음으로, 기를 쓰고 지우거나 막는다. 반면 어떤 소리는 의도적으로 살리거나 과장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특정 브랜드와 차종의 개성을 만들기도 한다. 소리는 품질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주요 자동차 제조사는 소리를 전담하는 부서나 직원을 두고 있다.

 

 

소리로 각인되는
자동차

 

“저처럼 모데나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요, 어려서부터 엔진음만 듣고 무슨 차종인지 단박에 맞추죠. 특히 마세라티의 사운드는 한 번 경험하면 잊을 수 없었어요. 어머니의 특제 라자냐에서 제일 맛있는 껍질처럼요.”
지난해 마세라티가 이탈리아 브레시아에서 치른 르반떼 시승회에 초청한 미슐랭 3스타 셰프 마시모 보투라(Massimo Bottura)의 말이다. 누구나 자동차의 소리와 관련한 추억을 하나쯤은 갖고 있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서 앉아 꾸벅꾸벅 졸며 들었던 방향지시등이나 와이퍼 작동음, 처음 산 중고차로 가속할 때 귓가를 간질였던 엔진음 등이 좋은 예다. 소리는 매우 강력한 기억 요소를 지닌다. 이른바 ‘청각 심상(Auditory Imagery)’이다. 그래서 광고에서도 즐겨 활용한다.
특정 소리를 좋은 기억으로 각인하고 나면 의도적으로 찾기도 한다.
“저는 와이퍼 소리에 집착해요.” 독일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레이스에 출전 중인 프로 드라이버 강병휘의 말이다. 때문에 그는 소유하는 차를 바꿀 때마다, 특정 브랜드의 와이퍼로 갈아 끼운다. 와이퍼가 물기를 거의 다 닦을 즈음 나는, ‘뿌으윽’ 소리가 주는 깔끔한 느낌 때문이라고. 최근 자동차 성능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감성을 부각시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자연스레 오감 중 청각에 해당하는 소리와 관련한 연구와 기술도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자동차가 내는 소리는 다양하다. 그러나 이 가운데 좋고 나쁜 소리를 나누는 기준은 상대적이다. 와이퍼 소리가 누군가에겐 노이즈지만, 강병휘 선수에게는 경쾌한 사운드인 것처럼. 그래서 신차를 개발할 땐 디자인이나 성능 못지않게 소리에도 신경을 쓴다. 제조사에 따라 사운드만 전담하는 부서나 인력을 따로 두기도 한다.

소리의 본질은 진동, 즉 떨림이다. 소리가 퍼져나가는 속도는 매질에 따라 다르다. 공기 중에서는 1초당 340m. 액체와 고체에선 더욱 빠르다. 가령 물에서는 공기보다 4배, 철에서는 15배 더 빠르게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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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음을 줄이기 위해 차체 구석구석에 흡음재와 차음재를 씌운다

 

 

악착같이
지워야 하는 소리

 

‘달리는 롤스로이스에서 가장 크게 들리는 건 시계 소리다.’ 아득한 과거, 롤스로이스의 광고 문구였다. 자동차는 2만~3만 개의 부품이 모여 움직이는 기계. 소리가 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그래서 정숙성은 예나 지금이나 기술력의 상징으로 일컬어진다. 불쾌한 소음을 줄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소리의 전달을 막거나 원인을 없애거나. 자동차에서 가장 큰 소음을 내는 부품은 단연 엔진이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불지옥’이 따로 없다. 가령 급가속 때 종종 치닫는 6,200rpm(1분당 엔진 회전수)에서 피스톤은 무려 시속 800㎞의 속도로 도리질 친다. 피스톤의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꾸는 크랭크샤프트는 순항고도에서 날아가는 보잉 747-400 제트엔진의 터빈보다 더 빨리 돈다.
자동차가 달리면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 또한 엄청나다. 보통 풍절음이라고 한다. 고속주행 시 창문을 열고 손바닥만 살짝 내밀어 봐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게다가 공기저항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 고속에선 손바닥 하나만으로도 헤어드라이어보다 큰 소리를 내는데, 커다란 쇳덩이가 온몸으로 공기의 벽을 뚫으며 지르는 비명은 우리의 상상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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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최고급 세단 한 대에 들어가는 흡·차음재. 150여 개에 달한다


타이어가 노면 위를 구르는 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 자동차 전용도로나 고속도로 주변에 사는 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아스팔트 곱게 씌운 길은 양반이다. 시멘트로 마감한 도로나 울퉁불퉁한 험로에서 노면 소음은 급격히 치솟는다. 그밖에도 눈에 띄지 않을 뿐 자동차 속에선 수많은 톱니바퀴와 펌프, 액추에이터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자동차 제조사는 원치 않는 소음을 지우기 위해 소리의 틈입을 막는 차단재, 소리 자체를 빨아들이는 흡음재를 구석구석 아낌없이 쓴다. 나아가 소음에 맞대응하는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기술도 도입 중이다. 실내 스피커를 통해 불쾌한 소음과 같은 진폭의 역위상 음파를 쏴서 상쇄시키는 원리다. 최신 헤드폰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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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소리의 원인 중 하나인 진동을 찾기 위해 테스트 중인 자동차

 

의도적으로
살리는 소리

 

그런데 자동차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없애야 할 ‘공공의 적’은 아니다. 안전이나 기능적 이유로 꼭 필요한 소리도 있다. 시트벨트를 매지 않았거나 조명을 켜놓은 채 시동 끌 때 나는 경고음이 좋은 예다. 이처럼 자동차에서 들을 수 있는 효과음과 작동음은 50여 가지에 달한다. 범위를 확장하면 창문이나 도어 여닫을 때 나는 소리까지도 제조사가 신경을 쓴다.
그만큼 연구해야 할 범위가 넓다. 따라서 신차를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이 같은 소리를 논의한다. 역할은 뚜렷이 나눈다. 사운드 엔지니어는 소음을 줄이고, 사운드 디자이너는 소리를 만든다. 건반 두드려가며 음을 정하고, 멜로디가 필요한 효과음은 작곡을 한다. 우리가 무심코 흘려듣는 각종 효과음은 이처럼 치밀한 고민과 치열한 노력의 결실이다.
소리와 인지 반응에 대한 연구는 역사가 제법 긴 편이다. 19세기 독일에서 꽃을 피웠다. 여기서 쌓은 노하우를 사운드 디자인에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4㎑ 이상 고주파 성분을 포함한 음은 피한다. 불쾌함을 유발할 수 있고, 청각 기능 떨어진 고령자에겐 잘 들리지 않을 수 있어서다. 방향지시등 작동음처럼 연속적으로 내는 소리는 0.5~0.7초의 간격을 둔다. 심장박동이나 보행처럼, 인간이 가장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에서 경험하는 시간 간격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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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로 소음의 위치를 찾고, 마이크로 소음의 크기와 주파수 등을 분석하는 특수장비


국가별로 선호하는 음색도 조금씩 다르다. 독일 차는 기계적인 신호에 충실하다. 미국 차는 보다 부드러운 음색을 추구한다. 굳이 편을 가르자면 한국 차는 독일 차 소리에 가깝다. 또한, 브랜드와 차종에 따라 비슷한 소리를 추구해 공통분모를 만든다.
이때 경고음과 효과음은 물론 창문이나 선루프 여닫을 때처럼 조작과 연계해 나는 소리까지 일관성을 갖게 디자인한다. 소리로 개성을 부여하는 셈이다. 나아가 각각의 소리가 조화를 이루도록 배려한다. 최근 사운드 디자인은 감성의 영역마저 넘본다. 필요에 따라 기존 소리를 증폭시키기도 하고, ‘귀로 느끼는 품질’을 위해 물리적 장치를 더하기도 한다.

 

 

소리에
감성을 담는 방법

 

앞서 스타 셰프의 회상으로 소개한 마세라티가 대표적이다. 마세라티는 엔지니어와 오케스트라, 작곡가까지 동원해 배기음을 디자인한다. 디젤차도 예외는 아니다. 회전수별로 악보를 그려 만든다. 그 결과 ‘마세라티=사운드’의 공식을 널리 각인시켰다. 지난 2014년엔 브랜드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배기음으로 휴대폰 벨소리를 만들어 공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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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음 스튜디오를 연상케 하는 외부 소음 테스트 시설


엔진음을 의도적으로 키우는 장치도 인기다. ‘사운드 팩(폭스바겐)’, ‘사운드 심포저(포르쉐)’ 등 자동차 브랜드마다 명칭은 제각각이다.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가장 대중화된 방식은 스피커를 이용한다. 엔진 회전수나 주행 속도, 가속 페달 밟은 깊이 등의 정보를 토대로 ‘적절한’ 엔진음을 실내로 틀어 운전자의 흥을 북돋운다. 원치 않을땐 기능을 끌 수 있다.
포르쉐가 엔진음을 강조하는 방식은 한층 직접적이다. 스피커로 트는 가상음이 아닌, 특수 장치를 이용해 엔진음을 두드러지게 한다. 요컨대 엔진 흡기관에 얇은 막을 설치하고 실내로 연결한다. 그러면 가속 페달을 밟아 엔진이 공기를 세차게 빨아들일 때 얇은 막이 부르르 떤다. 그 진동에서 비롯된 소리가 실내로 스며들어 가속의 박진감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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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내에서 나는 소리는 탑승객의 귀 위치에서 측정한다. 가장 듣기 좋은 소리를 찾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친환경의 아이콘, 전기차 역시 소리 때문에 고민이 많다. 엔진이 없으니 소음의 절대적 수위가 높진 않다. 그러나 전기 모터 작동음을 소비자들이 낯설어해 틀어막는 데 여념이 없다. 주행 시엔 반대로 차 외부의 소음이 거의 없어 보행자 안전에 위협이 된다. 그래서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전기 모드로 달릴 때 인위적으로 소음내는 장치를 더한다.
한편, 소리는 품질을 가늠할 잣대가 되기도 한다. 차 문 닫을 때 나는 소리가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묵직한 소리를 내면 차가 튼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조사도 차 문 닫는 소리에 남다른 공을 들인다. 볼보가 대표적이다. 도어 안쪽의 충격 지지대를 동그란 바(Bar) 대신 W 형태로 만든다. 무게가 더 나가는 대신 안정적이고 묵직한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자동차에서 소리가 갖는 의미는 극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원치 않는 결과물(소음)로 시작해 기능적 역할(경고음)로 존재 의미를 찾았고, 이젠 소비자의 감성을 사로잡고 개성을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파워트레인의 전동화와 정보 표시의 디지털화에 가속이 붙으면서, 자동차에서 소리의 중요성은 한층 더 각별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