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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편집실 ı photo. 유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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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파장으로
마음을 울리다

 

김석원 음향감독

 

블루캡 대표
2016년 제3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음향상
2012년 제31회 홍콩금상장영화제 음향효과상
2010년 제47회 대종상영화제 음향기술상
2007년 제6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음향상
2005년 제4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음향상

 

보이지 않는 게 더 무섭다고 했던가. 스릴러나 공포영화에서 ‘끼이익’ 문 여는 소리, 뒤쪽에서 바스락거리며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만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있을까 싶다. 영화는 ‘보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듣는’ 부분이 영화를 즐기는 데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영화 속 숨겨진 소리는 관객의 인식 안팎을 드나들며 진정성을 더한다. 한국 영화 음향의 개척자 김석원 블루캡 대표는 ‘음향작업은 기술로만 접근해서는 안 되고 사람의 심리까지 건드려야 한다’고 말한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건축학개론’, ‘복수는 나의 것’, ‘아가씨’ 등 수많은 영화가 그의 손을 거쳤다. 국내 영화 음향에 처음으로 컴퓨터 기술을 도입하고, 20년 넘게 지휘해 온 그는 소리로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소리가
빚어내는 공간

 

광고 음악의 대부 김도향이 운영하는 서울오디오에 입사하며 소리와 인연을 맺은 김석원 감독. 1995년에 영화 사운드 스튜디오 블루캡을 설립하고 ‘돈을 갖고 튀어라’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예전에는 사운드 하나 넣으려면 마그네틱 필름 테이프에 소리를 녹음해야 했는데,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고 동시에 여러 소리를 재생하려면 집채만 한 기기가 있어야 했죠. 컴퓨터는 가상으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수많은 소리를 표현할 수 있어서 시도했던 거예요.”
컴퓨터가 지금처럼 널리 쓰이지 않던 시절, 국내 최초로 영화에 디지털 사운드를 도입했던 그는 매뉴얼도 제대로 없이 거의 독학으로 음향 소프트웨어를 다뤘다. 소리를 입체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김감독은 화면 크기에 따라 사운드의 깊이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화면이 작은 TV 광고를 만들 때는 소리가 간소하게 들어가지만, 화면 크기가 큰 영화 스크린은 그만큼 소리의 디테일이 필요하다는 것. 화면이 커지면서 잘 보이지 않던 것들까지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관객의 기억 속에 있는 소리를 무의식적으로 연상시킨다. 화면 뒤쪽으로 작게 택시가 보이는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관객은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 가짜라고 인식한다. 멀리있는 택시라면 소리에 거리감을 녹여서 소리의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한단다.
“소리에 위치와 방향을 넣어주면 심도가 생겨요. 관객은 소리의 울림만으로도 영화 속에 나오는 공간이 좁은지 넓은지, 천장이 높은지 낮은지 파악해요. 바닥의 두께나 심지어는 외관의 형태까지 알아차리거든요. 소리를 통해 영화 속 모습을 상상하는 거죠.”
영화 촬영을 위해 만든 세트가 눈은 속일 수 있어도 귀는 속일 수 없는 이유다. 나무로 지은 집을 배경으로 한 영화 ‘아가씨’ 작업 때, 합판으로 얇게 만든 세트장 바닥이 실제 마룻바닥과 차이가 커 오래된 미송 같은 재질에서 나오는 두툼한 울림을 일부러 만들었다고. 버선발로 마루를 걸어가는 소리가 너무 ‘쿵쿵쿵’ 나면 안 되고, 단단한 바닥을 밟는 묵직한 느낌을 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마음을
흔드는 소리

 

음향감독은 여러 파트에서 만든 소리가 화면과 주제에 맞게 어우러지도록 조화를 고민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을 한다.
“시나리오와 가편집된 화면을 보면서 성격을 잡아주는 일부터 시작해요. ‘아가씨’ 작업을 할 때는 일본 전통 가옥에서 느껴지는 단아함, 일본인 특유의 정갈한 느낌을 소리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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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향감독이 방향을 잡으면 각 파트별로 작업이 시작된다. 음향 작업을 쪼개어 보면 크게 다섯 가지. 배우의 대사를 다루는 다이얼로그, 총소리나 폭발음을 만드는 특수효과, 발걸음 소리나 옷깃 스치는 소리를 다루는 폴리, 웅성거리는 군중 소리나 도로 소음 등 환경에서 나는 소리를 표현하는 앰비언스, 이렇게 만들어진 소리를 음악과 함께 모아 각각의 레벨을 맞추는 믹싱 작업까지다.

김 감독은 치밀하게 계산한 소리로 사람의 마음에 담긴 기억을 끄집어낸다. 영화 ‘아가씨’의 방울 장면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리는 소리를 표현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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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원 감독이 참여한 영화 건축학개론 & 공동경비구역 JSA (출처_명필름)

 

“실제 방울도 쓰긴 했는데, 사실 방울만 있다고 방울 소리처럼 들리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같은 방울 소리라도 성격이 다릅니다. 농밀한 느낌이 나게 해달라는 박찬욱 감독의 요청이 있어서 방울을 입에 물었을 때 나는 소리, 두 개가 부딪쳤을 때 나는 소리 등 여러 가지를 시도했어요. 낭독회 장면에서는 남자들의 심리를 소리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시선이 움직일 때는 어떤 소리가 들릴까, 침 넘기는 소리는 어떨까, 하면서요.”
김 감독은 음향 작업을 “기술적인 것보다는 사람의 심리를 건드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모티브를 던져주면 관객들이 자신의 경험을 더해서 머릿속에 상상을 펼치는데, 이를 통해 관객과 소리로 대화를 하는 것이다.

 

 

소리로
만드는 영화

 

김석원 감독은 영화에 집중해서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해 주는 소리가 좋은 소리라고 말한다.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기억은 못 해도 영화에 몰입하게 한 사운드가 좋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영화 ‘아가씨’는 총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조용한 영화지만 음향이 풍성한 영화보다 훨씬 작업이 까다로웠던 편이다. 미묘한 차이에 따라 영화의 결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실제로 들리지 않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음향감독의 역할이다.

“숙희가 은 골무로 아가씨 히데코의 뾰족한 이를 가는 장면이 있어요. 비슷한 소품을 갖고 와서 제 이를 갈아보기도 했는데, 동시녹음으로는 채집이 안 돼요. 자기 귓바퀴를 만지면 소리가 나는데, 다른 사람한테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죠. 본인한테만 나는 그 소리를 밖으로 들리게 만드느라 애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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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원 감독이 참여한 영화 아가씨 (출처_flickr)


이를 가는 장면이지만 그 소리만 나는 것은 아니다. 워낙 조용한 장면이다 보니 배우의 호흡 소리까지도 신경 써야 한다. 호흡이 점점 바뀌면서 감정선의 변화가 나타나면 소리에서도 그 차이를 담아내야 하니까. 목욕 장면이라 배우가 물속에 있으니 물결 소리도 다양하게 표현한다. 물이 몸에 부딪히는 소리와 목욕통에 부딪히는 소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가씨’는 배우의 대사를 스튜디오에서 다시 녹음해 덧입히는 후시녹음(ADR) 작업이 특히 많았다.

“후시녹음을 한 이유가 여러 가지 있었지만, 일본어를 능숙하게 해야 하는 배역이 많다 보니, 자연스러운 일본어 톤을 살리려고 다시 녹음한 부분도 있었고요. 하정우 씨가 연기한 백작의 경우에는 캐릭터를 바꿨어요. 촬영할 때는 건들건들 사기꾼 느낌으로 대사를 했는데, 보니까 백작 역할에 맞게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해야겠더라고요. 명석한 사기꾼 느낌으로. 그래서 거의 후시녹음으로 대사 톤을 바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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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은 수많은 에피소드를 전했지만 모든 이야기는 한 곳을 향했다. 관객의 마음에 가닿는 소리다. 그는 음향감독은 완벽한 소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영화감독을 도와서 ‘소리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작업의 목표가 소리가 아니고 영화의 스토리를 보여주는 것이란 의미다. ‘폼’ 나는 소리를 만들어서 엔지니어로서 실력을 보여주려고 하다 보면 영화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실력은 거듭하는 기술의 발전으로 소프트웨어에게 금방 따라잡히기 쉬우니까. 결국, 기술보다는 영화와 관객의 시선에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김 감독은 관객이 느끼는 감정의 미묘한 곡선을 타고 넘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의 파장이 마음을 건드릴 때, 그 영화가 완성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