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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편집실 ı photo. 유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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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가까이
숨 쉬는 지도

 

가이아3D 신상희 대표

 

가이아3D 대표
국제오픈소스GIS재단 이사&한국어지부장
한국오픈소스GIS포럼 의장
Geospatial Traveller

 

점, 선, 면으로 그려진 평면적인 세상이 있다. 길이 교차하며 이룬 지도의 세상이다. 지도의 개념은 점점 확장되고 진화한다. 국가 권력의 상징에서 집단이 참여하는 장으로, 단순히 길을 기록하던 평면에서 사람들의 흔적을 담아내는 공간으로. 이렇게 진화하는 공간 정보 생태계에 사람과 지도를 긴밀하게 연결하려는 사람이 있다. 국제오픈소스GIS재단 OSGeo의 이사로 활동하며, 공간 정보 소프트웨어 회사 가이아3D를 이끄는 신상희 대표다. 2000년부터 17년째 공간 정보 분야의 사업을 이끌어 온 그는 집단지성이 이루는 폭발적인 힘을 믿는다. 신 대표가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오픈소스GIS와 오픈스트리트맵 활성화를 위해 힘쓰는 이유다.

 

 

함께 만들어가는 지도
‘오픈스트리트맵'

 

2013년 11월. 초속 105m의 초강력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휩쓸었다. 건물은 흔적만 남긴 채 무너져 내렸고, 도로는 쓰러진 나무와 건물 잔해로 뒤덮였다.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사상자가 속출해 구호활동이 시급했다. 그러나 1950년대 미군 지도로 움직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오픈스트리트맵 재단에서 파생된 HOT(Humanitarian Open Street Map Team)라는 비영리 기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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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태풍 하이옌 이후 수해복구를 위해 오픈스트리트맵 지도를 갱신했다. 초록색의 사각형으로 나타난 부분이 갱신된 영역


“HOT는 인도적 활동을 하는 곳이에요.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 구호활동에 필요한 지도가 없었는데, 오픈스트리트맵 팀이 위성사진을 토대로 지도를 만들어 제공했던 게 계기가 됐죠. ‘하이옌’ 태풍피해 때에도 HOT가 해당 지역의 위성 사진을 받아서 2주 만에 최신 지도를 만들었어요.”
오픈스트리트맵 재단은 2005년 설립된 영국의 비영리 기구로, 사용자 참여형 무료 지도를 제공한다. 위키피디아의 개념이 지도로 확장된 셈. 과거에 지도를 만드는 주체가 국가나 기업이었다면 지도를 만드는 주체가 개인으로 확장된 것이다.
“오픈스트리트맵은 누구나 데이터를 만들어낼 수 있고, 자기 목적에 맞는 지도를 생산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과거에 지도는 권력이나 거대 자본의 상징이었거든요. 지도를 제작하려면 비싼 장비를 동원해야 했죠. 이제는 크라우드 소싱 맵인 오픈스트리트맵이 당당하게 지도 서비스 분야의 한자리를 꿰찼어요.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에서는 오픈스트리트맵이 국가 지도에 필적할 정도로 정확해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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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위키피디아에 정보를 올리고, 또 다른 사람이 수정하며 여러 사람이 정보를 만드는 데 참여해 정확성을 높여가는 원리와 같다. 해외에 나가서 구글 지도에 접속해 보면 동해는 일본해로, 독도는 리앙쿠르 암초나 다케시마로 표기된다. 그런데 오픈스트리트맵은 전 세계 어디에서 접속해도 독도로 표기돼 있다. 한국인들이 제대로 고쳐놓으면 일본인들이 다시 고치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사이버 전쟁이었다고. 마침내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인정되어 그 표기는 독도로 확정됐다.

 

 

 

자본의 힘을 넘어서는
집단의 힘

 

빠른 속도로 갱신되는 오픈스트리트맵의 뒤편에는 수많은 사용자가있다.

“얼마 전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 산사태가 나서 1번 국도가 막혔어요. 오픈스트리트맵 사용자들이 길이 막힌 곳을 표시하니 몇 시간 만에 지도가 최신 정보로 변경됐죠. 등록된 사용자가 3백만 명이니, 조금씩만 참여해도 지도가 정확하고 빠르게 갱신돼요.”
오픈스트리트맵의 길은 기존 지도에 나타난 길보다 더욱 정밀하고 섬세하다. 오픈스트리트맵에 나타난 길의 총 길이가 상업 지도의 길보다 긴데, 상업 지도는 주로 내비게이션 용도가 많기 때문에 차로를 중심으로 표시하지만 오픈스트리트맵은 사용자 각자가 필요한 목적에 맞게 보행로나 등산로, 애완견 산책로, 사이클 지도 등의 데이터를 쌓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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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픈스트리트맵 내비게이션 사례. 네팔은 상업 내비게이션 서비스가 없는 지역이지만 오픈스트리트맵을 사용할 수 있다

 

요트를 운항하는 사람들이 만든 ‘오픈씨맵(Open Sea Map)’이 생긴 것도 그 맥락이다. ‘오픈드론맵’이라는 프로젝트 역시 집단의 힘을 활용한다. 원래 드론으로 찍은 사진에는 좌표 정보가 없지만, 사진에 좌표 값을 넣어서 공간 정보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드론으로 촬영한 이미지를 한곳에 모으면 고해상도의 정밀 항공사진이 나올 수 있다. 신 대표는 지도를 이용하는 사람이 동시에 지도를 생산하는 ‘프로슈머’가 된다고 전한다.
“다른 사람이 만든 데이터 위에 0.1%만이라도 정보를 보태면 정보를 소비하면서 동시에 생산자가 됩니다. 이게 바로 집단의 힘이고요.”

토요타 자동차는 ‘텔레나브’라는 이스라엘 업체를 통해 일부 모델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오픈스트리트맵의 데이터를 적용했다. 신 대표는 요즘의 화두인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지도에도 결국 오픈스트리트맵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율주행차에는 고정밀지도(HD Map)가 필요하거든요. 지도가 정확해야 자동차가 스스로 주행하는 데 문제가 없을 테니까요. 고정밀지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장비와 인력이 어마어마해요. 그래서 저는 이 분야도 결국 오픈스트리트맵에서 포용하는 형태로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율주행차에 달린 각종 센서에 입력된 데이터를 공간 정보로 바꾸어 지도에 넘겨주는 서비스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그 때문에 이번에 인텔이 ‘히어맵’에 투자했죠. 자율주행차에 쓰이는 지도의 궁극적인 형태는 스스로 정보를 갱신하는 ‘셀프힐링맵’이에요. 센서가 발견한 사실을 바탕으로 지도를 갱신하도록 오픈스트리트맵의 형태로 간다면 실시간 업데이트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나날이 확장되는
지도 생태계

 

오픈스트리트맵이 지도 데이터를 사용자가 직접 생산하고 수정하는 참여형 지도라면, 오픈소스GIS는 지리 정보 시스템의 소스코드를 공개해 누구나 편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공간을 분석하는데 활용하는 지리 정보 시스템이라는 도구를 사용자가 목적에 맞게 수정해서 쓸 수 있다. 오픈스트리트맵, 정부나 기업에서 만든 지도가 음식을 만들 때 쓰는 재료라면, 오픈소스GIS는 조리법 중 하나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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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지도의 개념은 실내 공간까지 포괄하며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땅이라는 영역과 실외 공간을 주소 체계의 2차원적인 데이터로 기록했던 것이 과거 지리 정보라면, 이제는 하늘과 우주, 실내까지 포함하는 3차원적인 공간 정보 데이터를 지도에서 다룬다.


오픈소스GIS는 최근 오픈스트리트맵과 함께 라이선스 비용을 줄이는 대안으로 떠오르며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신 대표는 최근 한국오픈소스GIS협동조합을 설립해 오픈소스GIS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

“예전에는 오픈스트리트맵이나 오픈소스GIS가 해커나 개발자들이 주축을 이루는 커뮤니티 위주였어요. 그런데 정확도가 높아지면서 활용 가능성이 커지자 상업 시장에서도 관심을 두게 된 거예요. 물론 상품으로 쓰이려면 몇 가지 부족한 점이 있어요. 디자인이 다듬어지지 않은 데다, 기능이 완벽하지 않고, 사용방법 안내도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중간에서 매뉴얼을 만들고 교육을 진행하며 문제 해결을 돕는 업체가 생겨나고 있죠. 저희도 그중 하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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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픈소스맵의 GPS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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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SS4G 2015 Seoul 대회에서 참가자에게 나눠준 티셔츠 디자인으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우리나라 부분을 담고 있다.


지도의 개념은 단순히 땅을 바탕으로 주소 체계에 의지하는 단계를 넘어섰다. 주소 정보를 바탕으로 하는 ‘지리 정보(Geographic Information)’라는 개념에서 GPS나 위성사진, 지오태그 등의 여러 다양한 지리 데이터를 모두 포함하는 ‘공간 정보(Geospatial Information)’라는 개념으로 확장된 것이다. 축구 선수들의 열기를 감지해 동선과 활동 양상을 분석하는 ‘히트맵’도 공간 정보를 활용한 사례다. 땅과 지리에만 초점을 두었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영역에 여러 공간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가이아3D에서 출시를 준비하는 3차원 실내 공간 소프트웨어 역시 공간 정보 맥락의 확장이다.
“현대 인류는 실내 환경에서 80% 이상의 시간을 보내요. 그런데 막상 실내 지도는 부족합니다. 저희는 우주에서부터 건물 안 실내 환경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지도를 3D로 구현하려는 거예요. 빌딩 내부나 자동차 생산설비 같은 정보를 천장 조명이나 볼트와 너트가 보일 정도로 고정밀지도로 나타내려고 하고 있어요. 보통 3D 데이터는 무거워서 특정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볼 수 있는데 저희는 누구나 웹상에서 간편하게 볼 수 있게 하려는 거죠.”
과거의 ‘지도’가 단순히 길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을 의미했다면, 현대 지도는 그 길을 살아가는 사람과 행동 양식을 포함한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길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를 연결하는 선이며, 그 선을 지나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신 대표는 길을 수단으로 보기보다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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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서북쪽으로 880km 떨어진 홉스굴 호수로 향하던 때였어요. 길이 좋지 않아 차가 계속 고장이 나더라고요. 처음에는 목적지에 이르지 못할까 봐 조바심이 나더니 두세 번 고장이 나니까 마음을 내려놓게 되더군요. 어차피 여행은 과정을 즐기며 취하는 ‘쉼’이 아니었던가 하면서요. 차가 고장 나면 풀밭에 누워 음악을 들으며 뒹굴뒹굴하거나,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어요. 그제야 몽골의 진정한 매력은 유명한 사막이나 호수가 아니라 초원에 나지막하게 핀 들꽃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람들이 지나다니면 길이 된다는 말이 있듯, 길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그곳을 거니는 사람의 숨결까지 담아내는 지도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지도가 아닐까. 조금만 더 욕심을 내본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