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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편집실 ı supervisor. 강내희 _<길의 역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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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돌아보다

 

길은 태초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인류의 습관적인 발자취의 집합이다. 직립보행을 시작한 이래 인류가 두 발로 서서 걷고 뛰기 시작하면서부터 길을 만들며 길 위의 삶을 살아왔다. 길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이며, 길은 인류 문명의 발전과 밀접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은 길을 만드는 존재이자, 길 위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다.

 

 

길의 탄생과 역사

 

인간이 발로 길을 내는 것은 다른 동물들이 이동 수단으로서의 발로 길을 내는 것과 달리 도구를 사용하는 손을 써서 길을 낸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인간의 길은 직립보행 진화로 인해 인간 신체가 겪은 형태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만들어진 셈이다. 특히 직립보행과 주행능력을 갖추게 되면서 인간의 반복적인 몸놀림은 습관을 낳고, 몸의 습관은 자연에 물리적인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길나다’ 라는 말이 ‘버릇이나 습관이 되어 익숙해지다’, 혹은 ‘윤기가 나거나 쓰기 좋게 되다’는 뜻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어로 ‘방법’을 의미하는 ‘Method’라는 단어가 ‘hodos’, 즉 ‘길’이라는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것 역시 우연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길의 역사는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인류의 먼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후 세대인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한 약 20만 년 전부터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오늘날 그 흔적을 추적할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진 것은 호모사피엔스 이후 훨씬 나중일 것이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세계의 다양한 길의 역사를 추적 조사한 바 있는 맥스웰 레이에 따르면, BC 1만 년경 온대지역 사람들이 좁은 길을 사용하고 있었고, 이후 빙하기가 물러나면서 나머지 지역으로도 길이 확산되었다. BC 8000년경에는 지구의 기후가 안정되면서 동물들의 이주 패턴이 뚜렷해지고 인간의 왕래도 활발해졌다. 인간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필요에 의해 길을 만들었다.

 

 

 

다양한, 너무나도 다양한 길

 

인류가 만들어낸 길은 어떤 것이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인디언 길’은 들소가 다니는 길을 인디언들이 함께 사용하면서 만들어졌다. 이 인디언 길은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백인들이 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로 확장했으며, 이 가운데 일부는 이후 20세기 자동차 길, 고속도로로 진화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동물이 만들어낸 길을 아직도 공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솔길’은 인간이 만든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길이다. 오솔길은 숲속, 들판, 풀밭, 황야 등에 난 좁은 길로, 인공적으로 조성할 수 없고 오직 사람이 직접 걸어야만 생기는 길이다. 오솔길의 ‘오솔’은 사방이 무서울 만큼 고요하고 쓸쓸하다는 의미의 ‘오솔하다’의 어근이다. 하지만 길을 잃고 산을 헤매다 오솔길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왜냐면 오솔길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마을과 연결되어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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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동물을 길들여가며 함께 필요한 길을 조성했다


오솔길이 사람의 힘만으로 만들어졌다면 ‘당나귀 길’은 사람이 동물을 길들여 그 동물과 합작하여 만들어낸 길이다. 즉 인간이 동물을 길들여 사용하면서 필요에 의해 조성된 길이다. 당나귀, 말()이 만든 대표적인 길이 바로 비단길로 잘 알려진 ‘차마고도’다. 차마고도의 역할은 명확하다. 바로 교역의 필요에 의해 조성된 인공 길이다. 이런 차마고도처럼 세계 다른 문명이 시작된 여러 곳에서는 유사한 길이 상당수 발견되고 있다.
그럼 과연 인간만이 길을 만들 수 있을까? 정답은 ‘아니오’다. 자연도 길을 만든다. 대표적인 것이 ‘물길’이다. 바다에서의 ‘뱃길’ 혹은 ‘항로’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물길이란 토지 위에서 물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길을 형성하여 흐르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문명의 발상지가 모두 풍부한 물길을 가진 강 유역에서 발생한 것을 보면 물길이 고대 농경사회에 끼친 영향은 거의 절대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의 기하학은 치수 즉 물을 측량하고 예측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발달했다.
기하학은 나일강 대홍수 뒤 농경지를 정확히 재분배하고 세금을 정확히 징수하기 위해 발전한 수학 학문이라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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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이 풍부하고 토지가 비옥한 강 유역에서 발생한 세계 4대 문명


‘왕도(王道-왕이 다니는 길)’는 정복과 지배의 길이다. 기원전 고대중국의 진시황은 중국대륙 전역에 걸쳐 ‘치도(馳道)’라고 하는 왕 전용 순례길을 만들었다. 오늘날 고속도로와 같은 기능을 담당했던 치도는 반란 시 빠르게 군대를 투입할 수 있어, 그야말로 왕을 위한 길이었다. 왕도는 대개 수 천 킬로미터에서 수 만 킬로미터에 이르기 때문에 엄청난 인력을 동원해야 건설할 수 있었다. 이집트, 페르시아, 중국 등 고대사회에 왕도가 건축되었다는 것은 당시 왕이 엄청난 인력과 재화를 가진 권력을 크게 행사했음을 보여준다. 왕도는 아울러 지방을 다스리고 세금과 물자를 쉽게 거두어 들이는 데에도 큰 몫을 했다.
서울 종로의 ‘피맛골’은 왕이나 고위 양반들이 다니던 길을 피해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 발전했다. 왕이나 고위 양반 행차 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그들이 떠날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이를 피하려 사람들은 왕도인 종로의 뒷편 골목을 애용했던 것이다. 피맛골은 ‘높은 사람들의 말()을 피하다’라는 뜻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길, 속도를 더하다

 

‘기찻길’과 ‘항로’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달과 궤를 같이 한다. 16세기 궤도에 수레를 올려놓아 이동했던 것이 기차의 시초라면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기차는 놀라우리만치 빠르게 변신했다. 1826년 영국의 산업도시 맨체스터와 항구도시 리버풀을 연결하기 위해 처음 개통된 철도는 대량 운송체계를 구축하면서 많은 양의 물자와 사람을 이동시켰다. ‘항로’ 역시 마찬가지다. 바람을 이용한 범선에서 증기기관을 얹은 증기선은 기존의 범선 항로를 더욱 발전시켰고 산업화와 세계화를 앞당겼다. 

‘포장도로’는 초기에 마차가 다니기 쉽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이후 자동차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말았다. 당시 증기기관을 이용했던 기차와 달리, 자동차는 석유를 사용하는 훨씬 작은 크기의 동력장치를 이용하여 스피드와 효율성으로 기차와 경쟁했다. 자동차의 발명과 더불어 울퉁불퉁한 도로는 자동차가 다니기 편한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타이어의 발전, 엔진의 발전 그리고 철강산업 등의 발전과 더불어 자동차의 이동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마침내 ‘고속도로’의 등장으로 물자와 사람의 이동은 더욱 편리해지고 산업은 점점 팽창해갔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혁명과 길의 발전으로 자본주의 시대가 문을 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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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는 1968년 개통한 경인고속도로다(출처 _인천광역시)

 

길은 사람의 신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속도를 얻기 위한 변화를 끊임없이 거듭한 길은 다음의 세 단계를 거쳐 발전했다.

첫째 단계의 길은, 인간이 발로 만들어 낸 길이다. 신체의 일부인 발로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땅 위에, 숲 속에, 강가에 길을 만들었다.
두 번째 단계의 길은, 바퀴의 발명으로 탄생한 길이다. 바퀴는 수레를 탄생시켰고, 사람이 끄는 수레는 말을 이용하는 마차로 진화하면서 물자의 이동뿐만 아니라 군대의 신속한 이동을 도왔다. 고대 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로마, 이집트 제국들의 필수품은 바로 마차였던 것이다. 이후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마차는 기차, 자동차로 대체되어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전을 지탱했다. 또 산업화로 인한 초기 자본주의가 탄생했으며, 초기 자본주의의 불합리에 맞서 이에 대항하는 사회주의가 탄생하기도 했다.
세 번째 단계의 길은, 앞서 언급한 두 단계의 길과 근본적으로 다른 길이다. 이 새로운 길은 바로 ‘정보의 길’이다. 인간이 발로 걷거나, 바퀴를 이용해 이동하는 종전의 물질적인 길을 뛰어넘는다. 전파의 발달, 통신의 발달로 탄생하게 된 정보의 길에 인간의 신체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정보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전기통신시대 정보는 1초에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했다. 이후 광통신시대에 들어 정보는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는 속도를 가졌다. 인터넷으로 미국에 물건을 주문하면, 며칠 후 수만 킬로미터를 날아온 택배상품을 받을 수 있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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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섬유를 이용한 광통신시대의 길에서 정보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길 위에서 길을 돌아보다

 

인류의 직립보행으로 최초의 길이 만들어지고,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과학과 산업의 발전으로 길은 전 세계를 거미줄처럼 연결했다. 인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도 늘 길은 한결같이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인류의 길 만드는 탁월한 능력에 의해 숱한 길이 만들어지고 발전해왔지만, 순기능적 작용뿐 아니라 인간의 지배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길에서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왕도에서부터 공로에 이르기까지 길은 인간의 사회적 지배에 따라 제한이나 통제가 있었다. 고대, 중세에는 왕에게 길 사용의 최종 권한이 있었으며, 근대 산업혁명 이후 자본과 국가가 그 권한을 이어받았다. 길이 인간의 잠재력을 구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작용하려면, 오늘날 우리를 운송물로 만들고 있는 길 체계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길의 지배적 기능과 작용 방식을 공유지적 성격을 회복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미래의 길이 어떻게 진화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길은 무엇보다 인간의 길이라는 점이다. 길의 역사적 형태와 기능은 모두 인간 삶의 궤적이고 발자취다. 그런 점에서 길의 역사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역사다.

 

 

 

Book Info

 

길의 역사-직립 존재의 발자취
저자 _ 강내희 / 출판사 _ 문화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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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서서 걷고 뛰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길을 만들며 길 위의 삶을 살아왔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시선으로, 물리적인 길이야말로 모든 길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길의 역사를 살펴본다. 직립보행 존재로서 인간이 새겨온 발자취인 길의 역할, 기능, 용도에 대해 생각해보고 인류가 구축해낼 새로운 형태의 길 모색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