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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편집실 ı photo. 유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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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담긴 미묘한
표정을 읽어내다

 

미디어 아티스트 한호

 

2017 ‘청춘이 청춘에게 전함’/포스코 미술관/한국
2016 프로젝트 대전 ‘코스모스’/대전시립미술관/한국
2016 ACAW아시안 아트위크/뉴욕 실비아 왈드앤포김 갤러리/미국
2016 세계유네스코 본부 호안미로홀 특별전/유네스코 본부/프랑스
2015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팔라조범부 미술관/이탈리아
2015 브라질 트리오 비엔날레/브라질 국립미술관/브라질
국립 파리8대학 학사, 석사, 박사준비과정 수료

 

아침이다. 창틈으로 파고드는 싱그러운 초록 햇빛이 깨우는 시간. 태양 빛이 채워지니, 방 안 풍경이 또렷해지며 제 옷을 찾아 입는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지쳐 돌아오는 퇴근길. 가로등보다 환하게 웃는 둥그런 달빛에 밤공기가 푸근해진다. 조밀하게 구석구석을 채우는 빛에 어느새 허해졌던 사람들의 마음이 벅차오른다. 빛의 힘이다.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빛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여 온 아티스트 한호. 그는 상실과 고독을 달래준 빛이 언제나 자신의 내밀한 벗이었노라고 말한다.

“어린 나이에 일찍 어머니와 헤어져 지내며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외로움을 자연의 빛이 채워 주었습니다.”
외로움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 어린 마음에 어떻게 자연의 힘이 스며들었을까. 빛은 어디에나 있었다. 어디로도 떠나지 않았다. 때로는 우물에 비친 둥근 달의 형상이, 때로는 강물에 반짝거리는 햇빛의 물결이 그를 치유하곤 했다. 이제 와 그 손길에 보답이라도 하듯 그는 정성껏 빛을 빚어 세상에 쏘아 올린다. 이 세상 속, 상처받은 여린 영혼들의 곁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람은 빛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색을 인지하고, 또 명암을 구별한다. 그러므로 본다는 것은 빛의 능력에 기대어 세상을 이해하는 것일 테다. 어둠이 내린 세상에서는 어떨까. 사람들은 별을 보기 위해 온통 새까맣게 물든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한 치의 빛줄기도 허용하지 않는 완전한 어둠 속에 있으면, 별이 하나둘 점을 찍으며 나타난다. 빛이 있어야 세상이 보이지만, 또 빛이 없어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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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유도원도 - Paradise, 2015


아티스트 한호는 예술과 과학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캔버스와 한지, LED를 혼합한 ‘미디어 회화’라는 형식을 통해 낮과 밤의 빛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그의 작품은, ‘예술은 어렵다’라는 선입견을 가진 관객조차 금세 매혹시킨다.

충남 천안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영상미디어전 <Eternal Light>(주최_천안예술의전당미술관/후원_천안문화재단) 을 찾았다. 갤러리에 들어서니 ‘동상이몽’이 눈에 띈다. 분단국가에 사는 슬픔과 그리움을 동양적 회화의 필치와 색감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먼 곳을 바라보는 여인과 군인. 낮의 빛 아래, 여인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물방울을 흘린다. 다시 어둠이 내리면 캔버스에 뚫린 구멍 틈새로 밤하늘의 별빛이 전해지고, 이내 인물의 실루엣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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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상이몽 - Dongsang I Mong, 2015


“캔버스 위에는 현실의 모습을 회화로 나타내고, 구멍을 뚫은 캔버스 뒤에 LED 조명을 설치해서 비현실 공간을 구현합니다.”
컴컴한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그림 안의 별빛들이 캔버스를 뚫고 현실에까지 손을 뻗는다. 손으로 일일이 타공한 캔버스의 구멍은 제각기 다른 깊이와 크기로 분포한다. 수천 개의 구멍이 미세하게 밀도가 다른데, 빛은 그 감도를 잡아낸다. 조금만 넓어도, 조금만 작아도 빛의 균형은 놀랍도록 달라진다.
‘빛으로 공간을 만들고 관객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인다’고 말하는 그. 관객들은 그의 작품 안에서 “따뜻하다. 빛이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하다”고 반응한다. 작품의 주제가 관객을 정확히 관통할 때, 예술가에게 그만큼 기쁜 일은 없으리라.
“제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영원한 빛’이에요. 주제가 추상적이지요? 아티스트는 잡히지 않는 것, 애매한 것, 보이지 않는 것, 즉 예술가의 마음속에만 있는 개념을 관객의 눈에 보이게 하는 사람이겠죠. 과학의 소산인 LED라는 기술을 활용해 제 마음속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입니다. 별이라는 자연의 빛을 과학이 구현하는 것이죠.”
그리하여 그의 캔버스에는 낮과 밤, 빛과 어둠, 전통과 현대, 이상과 현실이 모두 담긴다.

 

 

빛의 표정을
읽어내는 상상

 

빛에는 미묘한 표정이 있다. 아티스트 한호는 빛이 뿜어내는 감정을 읽으려 한다. 경쾌하고 밝기도, 슬프고 우울하기도, 또 어느 때는 성스럽기까지 하다. 빛은 색보다 훨씬 정교한 감정을 표현해낸다. 흔히 푸른 계열은 차갑고 냉소적인 모습으로, 붉은 계열은 뜨겁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얘기하지만, 빛이 머금고 있는 오묘한 색채에서 발견하는 표정은 그보다 미묘하면서도 고아하다고 그는 말한다.

빛과 소통하는 그의 능력은 상상의 힘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그 소통의 내용을 예술의 모습으로 구현해서 세상에 알리는 일은 끊임없는 실험과 우연이 빚은 결과다.
“저에게 빛은 계속해서 실험하게 만드는 존재예요. 실험하다 보면 놀라운 결과를 얻기도 합니다. 과학 분야에 계시는 분들이 빛의 프리즘을 어떻게 계산해서 구현했냐고 물어보기도 하시는데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변수를 계속 바꿔 가며 시도하다가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요. 여러 시도가 쌓이고 쌓여서 농축되면 또 다른 변수가 생기고요. 세상 어느 분야의 진보가 다 그렇겠지요? 꾸준한 시도와 변수와 우연, 이게 바로 진보의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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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의 방주 - 21c Ark of Noha, 2016


그에게 빛은 현실을 훌쩍 뛰어넘어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존재이자 소통의 수단이다. 그는 ‘속도 제한이 없다는 것’이 예술가의 특권이라고 말한다. 과학은 단계별로 차근차근 이루어 나가야 진보가 이루어지지만, 예술은 단계를 건너뛰어 멀리 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한호 작가는 자연의 현상을 새로운 매체에 담아내려는 시도를 달리하며 작품을 계속해서 진화시켜 나간다.

그런가 하면 ‘21세기 신 노아의 방주’는 한지와 LED, 영상, 거울을 활용한 복합 매체 작품이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는 세상이 악하고 부패해서 신이 물로 벌을 내릴 때 나오는 소재죠. 21세기의 세상 역시 혼탁하고 이념적인 분쟁으로 가득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수면을 의미하는 방주 형태의 거울 위에 서서 한지로 만든 방주의 숲을 올려다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한지의 줄기 사이로 여러 표정의 빛이 말을 건넨다.

“많은 이들이 상처를 주거나 받고 있는데 이 작품 가운데 서서 소통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문제와 맞부딪치며, 반성하거나 두려움을 느끼거나 혹은 환희를 즐기며 치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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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꿰뚫는 빛,
소통의 통로

 

빛이 만들어 내는 물결은 때로는 가슴이 저리도록 아프다. 천장에 매달린 알루미늄 조각이 공간의 벽에 빛을 반사하며 물의 환영을 그린다.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비가 한들한들 날아간다. ‘비몽’이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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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몽 - Sad Dream, 2016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분향소에 갔다가 유품을 보게 됐어요. 어린 학생들이 영문도 모르고 이슬로 사라진 가슴 아픈 일이었죠. 꿈과 희망을 잃은 학생들을 치유하는 빛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평창 비엔날레에 출품한 후 뉴욕에도 전시했었는데, 그곳에서도 관람객이 많이 공감해 주셨어요.”
굳이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빛은 공감을 일으키는 소통의 통로가 됐다. 단순히 추상적인 형태의 모빌을 설치한 작품에서 많은 관객이 작가와 같은 감정을 공유한 것이다. 바다 표면의 물결을 물 아래에서 보면 이러한 형상일까. 보이는 형상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슬픔과 아우성을 느끼며 온몸이 전율했다. 그가 말하는 예술가의 역할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인류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 

때로 예술은 멀게 느껴진다. 그런데 빛으로 소통하는 한호 작가의 예술은 세상과 무척이나 가깝다. 일정한 형태가 없는 빛이 작은 틈바구니를 비집고 공간을 가득 채우듯 빛의 예술은 공기처럼 사람들의 들숨과 날숨에 호흡하며 영혼을 정화한다.
“한국이 처해 있는 상황, 인류에게 닥친 문제, 이데올로기나 인종 간의 갈등, 기근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어요. 작업에 빛을 담아내어 성찰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한없이 나약하지만, 시간을 초월해 시대를 넘나들며 진보를 끌어내는 영원한 빛을 바라보면 어느덧 죽음 앞에서도 초연해지는 상태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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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창조 - The Beginning,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