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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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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뛰어넘어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펼친

 

쥘 베른
Jules Verne

 

 

최고의 상상가 한 명을 꼽아보시라. 사상가가 아니라 상상가다. 나는 주저없이 쥘 베른(Jules Verne)을 꼽는다. 누구나 재밌는 발상을 하지만 그 발상은 경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상식을 토대로 하고 지식의 최전선의 안쪽에 머무른다. 세상을 바꾸려면 경계를 뛰어넘어 전선을 바꿔야 한다. 쥘 베른은 경계를 넘는다. 그의 세계는 무한하다.
<해저 2만 리>(1870년)에는 무한한 바다가, <지구 속 여행>(1864년)에는 무한한 땅이, <지구에서 달까지>(1865년)와 <달세계 일주>(1865년)에는 무한한 하늘이 있다.

 


 

바다:
무한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잠수함 노틸러스 호의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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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쥘 베른의 생전 모습(1892)

 

 

2002년 늦가을, <해저 2만 리>의 번역원고가 내 손에 들어왔다. 출판사는 책에 등장하는 해양생물의 학명을 찾아달라고 요구했다. 어려운 일이 아닌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책에 해양생물이 너무 많이 등장해서가 아니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들이 무척이나 많았던 것이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 쥘 베른이 실제로 자기가 본 해양생물을 책에 쓴 게 아냐. 그것은 그의 상상의 산물일 뿐이야!” 쥘 베른의 소설은 현실세계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에게는 바다와 해양생물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있었는데, 자신이 수집한 지식으로 소설의 바탕을 삼고 거기에 자신의 상상을 녹여냈다. 실제로 존재하는 해양생물도 소설에 등장한다. 그것이 너무 생생한 나머지 다른 생명체마저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 것이다.


최초의 물속 여행은 <해저 2만 리> 이전에 이미 실현되었다. 1778년 미국 독립전쟁 때 영국 군함을 공격한 달걀 모양의 잠수정 터틀(Turtle)과 1863년 프랑스 해군 잠수함 플론져(Plongeur)가 진수하였다. 터틀은 사람의 힘으로 작동했으며, 플론져는 압축 공기를 동력으로 사용했다. 이것이 당시 기술의 전선이었으며 쥘 베른의 상상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그는 무한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잠수함을 상상했다. 1954년 미국은 세계 최초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진수시켰다. 그 잠수함의 이름은 ‘SSN-571 노틸러스’이다. <해저 2만 리>의 노틸러스 호가 실현된 것이다.

 


 

땅:
쥘 베른이 만들어낸

땅속으로의 상상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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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쥘 베른의 공상과학소설 <해저 2만 리>

 

 

 

땅속으로의 여행은 어떨까? 땅속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그곳에 생명이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땅속에는 생명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공기와 물이 있기는커녕 뜨거운 용암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쥘 베른의 생각은 달랐다. 쥘 베른은 ‘지구 공동설’이라는 가설을 내놓는다.

땅속은 텅 비어 있고 생각처럼 뜨겁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지구 내부로 갈수록 뜨거워진다면 지구는 이미 폭발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만약 땅속에 정말로 텅 빈 공간이 있다면 거기에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어떻게 갈 것인가? 쥘 베른의 상상은 <지구 속여행>을 탄생시켰다. 한동안 잊혀졌던 <지구 속 여행>은 2008년에 개봉한 영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에 다시 등장한다. 지각변동을 눈여겨보던 지질학자가 몇 년 전에 실종된 형의 상자 속에서 책을 한 권 발견하는데 그것이 바로 <지구 속 여행>이다. 책 속에 남겨진 암호가 땅속 세상의 비밀을 밝힐 단서라고 여긴그는 조카를 데리고 암호를 해독하며 아이슬란드로 향한다. 산장에서 만난 산악가이드와 함께 사화산 분화구에 오르던 그들은 지구 중심 세계로 통하는 구멍에 빠진다.

지구 속이 비어 있다는 쥘 베른의 가설은 틀렸다. 당시 지식 세계의 한계였다. “난 성냥과 철도와 전차와 가스, 전기, 전보, 전화 그리고 축음기가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라고 쥘 베른은 흥분하며 말했다. 성냥과 전화기에 깜짝 놀라는 그런 시대였던 것이다. 그의 상상력을 낮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당시 과학의 전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경계를 넘었다.

 

문제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상상력이다. 쥘 베른의 19세기 생각이 21세기에도 통해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가 히트를 쳤다. 우리는 현대 과학의 전선을 돌파하는 상상은커녕 한참 뒤에서 공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늘:
인간의 영역으로 만든
쥘 베른의 달나라 여행

 

 

쥘 베른이 바다보다 먼저 자신의 세계로 만든 곳이 있다. 달이 바로 그곳이다. 쥘 베른은 지구와 달 사이의 경계를 넘어 사람들을 달에 데려가려고 했다.

쥘 베른 이전에도 이런 상상을 한 사람이 있었다.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는 <환상여행>(1839)에서 한스 팔이라는 대장장이를 열기구에 태워서 달나라로 모험을 떠나보낸다. 이 책에는 지구의 대기와 달에 대한 당대의 과학지식이 망라되어 있다. 열기구의 고도가 점차 높아짐에 따라 겪게 될 상황과 예상되는 문제들이 과학과 수학의 옷을 입고 현란하게 펼쳐진다. 당대 과학적 지식을 섭렵하고 그 위에 현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 작가의 천재성에 지금도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거의 동시대 사람인 쥘 베른은 에드거 앨런 포가 과학적인 연구 없이 <환상여행>을 썼다고 비판했다. 그가 보기에 이전에 나왔던 달나라 여행에 관한 이야기들은 순전히 공상의 산물이었을 뿐, 과학과 기술적 지식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래, 중력을 없애면 무게라는 게 없어지겠군. (…)” “그런데 아무 것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 것도 지탱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네. 자네 모자도 머리 위에 가만히 올라가 있을 수 없을 걸세. 돌들이 무게에 눌려 서로 들러붙을 수 있기에 집도 유지가 되는 거니까 중력이 없으면 자네 집도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없겠지. 배들도 물에 뜰 수 없을 테고. 배가 잘 뜰 수 있는 것도 중력 때문이니 말일세. 바다란 것도 있을 수 없네. 물결이 만유인력에 의한 균형을 이루지 못할 테니까. 대기란 것도 있을 수 없지. 중력이 붙들어주지 못하면 공기의 미립자들이 공간으로 흩어져버리거든.”

 

쥘 베른이 쓴 <달세계 일주>의 한 장면이다. 그의 과학적 추리는 정확하다. 달은 이제 전설의 고향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자동차가 대중화되고 비행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최첨단 교통수단은 배였다. 쥘 베른 시대에 보고된 UFO들은 모두 배처럼 생겼었다. 그런데 쥘 베른은 지금과 같은 로켓 모습을 상상해냈다.

 


 

공상을 넘어
상상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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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코 쇼에 출품됐던

쥘 베른의 초상화가 첨부된 우표(1955)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 행복은 재밌고 의미 있으며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분야에 도전할 때 온다. 구슬치기를 할 때 누구나 맞출 수 있는 가까운 구슬이나 터무니없이 멀리 떨어진 구슬을 공략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넘을 수 있는 구슬을 맞췄을 때 비로소 구슬치기가 즐거운 놀이가 된다.

SF는 ‘과학소설’이지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난 공상과학 소설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철저한 과학소설이 뭐가 재밌겠는가? 뭔가 새로운 생각을 담고 있어야 재밌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공상이 되어서는 재미가 없다.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상상을 해야 한다. 상상은 인류의 영역을 넓히는 힘이다. 영역 확장은 전선에서 일어난다. 전선에 한참 못 미치는 곳에서 하는 생각은 상상이 아니다. 그것은 잘해야 학습이다. 반대로 현대 과학에 발을 딛지 않고 전선 너머에서 하는 생각은 막연한 공상일 뿐이다. 상상이란 현대 과학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상을 하려면 과학의 최전선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상상을 위해서는 꼭 과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쥘 베른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최고의 상상가로 꼽히는 이유 중 하나다.

“나는 과학에 특별히 열광하지 않습니다. 과학 공부를 한 적도 없고 실험 같은 것은 더더군다나 없지요. (…) 하지만 내가 엄청난 독서광이라는 건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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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베른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프랑스의 아르 에 메티에르 역(Arts et Meti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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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니츠닌 노브고로트(Nizhny Novgorod)에 있는

쥘 베른 기념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