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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김기범 _<로드테스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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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숨은
가장 완벽한 도형, 원

 

원은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도형이다. 시작이나 끝이 없이 일정한 범위 안에 연속된 값을 나열한 결과물이다. 또한, 동적이면서 정적이다. 물리적으로도 의미가 남다르다. 큰 힘을 잘 분산시킬 수 있는 형태인 까닭이다. 원과 자동차의 인연은 바퀴로 시작해 디자인의 황금비율을 가늠하고 나누는 수단으로 이어졌다.

 

 

시작도 끝도 없는
동그라미

 

하나의 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 수학적 관점으로 본 원의 정의다. 원은 자연에서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형태다. 우리가 딛고 선 지구를 비롯해 태양과 달, 밤하늘에 총총 뜬 별의 단면이 원이다. 태양을 중심으로 별들이 움직이는 궤도 또한 원이다. 원은 물리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압력을 제일 잘 견딜 수 있는 형상인 까닭이다.

같은 이유로, 원은 운송수단의 비약적 발전도 이끌었다. 바로 바퀴다. 기원전 4000년 고대문명의 발상지 메소포타미아를 비롯한 중앙 유럽에서 바퀴의 역사가 싹을 틔웠다. 바퀴 이전에도 인류는 무거운 물건을 좀 더 쉽게 옮기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시작은 나무 썰매 같은 받침이었다. 사람이 직접 짊어질 때보다 한층 많은 짐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어깨의 부담을 던 대신 땅바닥과의 마찰을 이겨야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무 썰매 밑에 굴림대를 받치기 시작했다. 이집트에서 피라미드에 쓸 대리석을 옮길 때 이와 같은 방법을 썼다. 이후 굴림대 중심에 구멍을 내 고정했다. 그 결과 굴림대를 한층 안정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무거운 짐을 좀 더 쉽게 실어 나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우르 왕조 시대엔 세 조각의 나무를 연결대로 잇고 구리못을 박은 바퀴를 쓰기 시작했다. 나아가 이렇게 만든 두 개의 바퀴 사이에 축을 끼우고 나무판 아래 고정시킨것이 최초의 이륜 수레였다. 이후 신분 높은 사람을 태우기 위한 네바퀴 수레가 등장했다. 그러나 한계는 여전했다. 너무 무겁고 충격을 받으면 쩍 갈라졌다.

기원전 2000년경 바퀴살의 발명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했다. 가운데 바퀴통과 바퀴 테두리 사이에 여러 개의 막대를 연결했다. 그 결과 바퀴의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지름도 키울 수 있었다. 기원전 100년 즈음엔 바퀴 테두리에 철판을 둘러 내구성을 높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이 같은 진화에 가속을 붙였다. 전차 바퀴의 수요 때문이었다.

 

자동차와 노면을 잇는
타이어

 

바퀴는 오늘날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동차와 노면을 잇는 유일한 부품이기 때문이다. 바퀴를 이룬 부품 가운데 핵심은 타이어다. 가속과 방향 전환, 제동을 도맡는다. 자동차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타이어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 그래서 타이어를 일컬어 ‘동그라미의 과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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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끈 포드의 모델 T. 멋보다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이었다.

 

1885년, 독일에서 칼 벤츠가 가솔린 엔진을 얹은 ‘페이턴트 모터바겐(특허 자동차)’을 선보이기 전까지 자동차의 동력원은 증기기관이었다. 사람들은 괴상한 소음을 내며 달리는 육중한 기계 덩어리를 보고 경외심보다는 공포를 느꼈다. 오죽하면 영국에서는 자동차가 주행할 땐 55m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들고 걸으며 주위에 경고해야 한다는 ‘적기조례’까지 나왔을 정도다.

자동차 성능은 가솔린 엔진을 얹으면서 빠르게 진화했다. 따라서 나무나 쇠로 만든 바퀴로는 노면에서 오는 충격을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 결과 훗날 타이어 브랜드가 된 발명가들이 속속 등장한다. 1844년 찰스 굿이어는 바퀴 주위에 통고무를 둘렀고, 1888년 존 보이드 던롭은 타이어 안에 튜브를 넣고 압축 공기를 채워 승차감을 개선했다.
3년 후인 1891년, 프랑스의 앙드레와 에두아르 미슐랭(미쉐린) 형제는 휠에 끼우고 빼기 편리한 탈착식 타이어를 발명했다. 1904년 독일에서는 땅에 맞닿는 부위에 골을 새겨 마찰력 높인 타이어가 나왔다. 이후 타이어가 휠과 맞물리는 부위에 강철을 심었다. 휠과 단단히 결합하면서 튜브가 필요 없어졌다. 구르는 표면 안쪽의 고무엔 철사를 꼬아 넣었다.

그 결과 고속으로 달릴 때 타이어의 변형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또한, 천연고무보다 성능이 뛰어난 합성고무를 쓰기 시작했다. 급기야 1979년엔 주행 중 펑크가 나도 일정 속도로 어느 정도 달릴 수 있는 런플랫 타이어가 등장했다. 최근엔 공기를 넣지 않아도 형태를 유지하거나 구의 형태를 지녀 방향 전환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타이어도 개발 중이다.

 

황금비율 정하고
확장하는 수단

 

원은 바퀴뿐 아니라 자동차의 디자인 요소로도 인기다. 비단 자동차뿐 아니라 모든 디자인의 기초는 황금비율이다. 비밀의 공식은 바로 1:1.618. 그리스 시대 건축물과 조형물이 그 뿌리를 이룬다. 가령 파르테논 신전의 높이와 너비의 비율이 정확히 1:1.618이다. 비너스상의 전체 길이에서 배꼽과 머리까지의 높이 또한 이 비율에 충실하다. 

한 점을 중심 삼아 1:1.618의 비율로 선을 확장해가며 그리면 소용돌이 같은 형태가 나온다. 이 선을 오늘날 알려진 브랜드 로고나 제품 디자인에 대입하면 소름 돋을 만큼 딱 들어맞는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세 꼭지 별, 애플의 사과 로고, 트위터의 딱새 로고, 캐논 익서스 카메라의 외형과 렌즈 위치 등 황금비율을 이용한 디자인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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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르테논 신전의 완벽한 비율에서 얻은 영감과 쌍용자동차의 디자인 철학 Nature-born 3Motion의 Dignified Motion을 모티브로 자연의 장엄한 움직임을 형상화한 G4 렉스턴


황금비율은 가로와 세로의 비율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구름에서 영감을 얻은 애플의 아이클라우드 로고가 대표적이다. 이 로고는 각각 1:1.618 비율의 지름을 가진 네 개의 원을 조합해 윤곽을 그렸다. 나아가 로고의 높이와 너비의 비율 또한 정확히 1:1.618이다. 이처럼 원은 황금비율을 계산하고 확장하는 수단으로도 널리 사랑 받는다.

원은 자동차 디자인의 시작이기도 하다. 각 부분의 비율을 가늠하는 단위로 바퀴를 이룬 원을 쓰기 때문이다. 세단을 예로 들면, 차체 높이는 바퀴 2개를 위아래로 포갠 길이에 맞추는 경우가 많다. 그 다음은 앞뒤 바퀴 사이의 거리로 바퀴 3개 반에 주로 맞춘다. 이후 보닛은 차체 길이의 3분의 1, 옆 창문은 도어 패널의 절반, 트렁크는 보닛의 절반 등으로 비례를 정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다. 이 황금비율은 한 천재 디자이너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자연에서 비롯되었다. 앵무조개 껍데기의 단면이 대표적 사례다. 하나의 점에서 시작해 매끄럽게 회전하는 곡선이 바로 1:1.618의 연장이다. 이처럼 기막힌 사실을 일찍이 간파한 이가 바로 갈릴레오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자연은 신이 쓴 수학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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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그라미로 가득한 미니의 실내. 페달이 동그랗지 않은 게 어색할 정도다

 

 

정적이면서 동적인
원의 매력

 

원은 자동차 디자인의 테마로도 인기다. 1998년 아우디가 선보인 TT가 좋은 예다. 옆모습이 가장 상징적인데, 원 세 개를 겹친 형태였다. 이 같은 테마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앞뒤 디자인마저 대칭으로 빚었다. 실내 또한 원을 테마로 빚었다. 송풍구와 계기판, 스위치는 물론 실내 온도를 디지털로 띄우는 액정마저 동그라미로 통일했다. 원에 대한 강박이 지나치다 보니 동그랗지 않은 페달이 낯설어 보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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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자동차의 동그란 헤드램프를 눈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친근한 느낌 때문이다

 

이처럼 극단적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린 자동차 안팎에서 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원이 지닌 독특한 성질 때문이다. 원은 기하학적으로 완전한 도형이다. 시작이나 끝이 없이 일정한 범위 안에 연속된 값을 나열한 결과물인 까닭이다. 또한, 정적이면서 동적이다. 그래서 동양 철학은 원을 조화로운 하나의 세계, 상생하는 완전한 세계의 상징으로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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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스바겐은 원을 테마로 삼은 뉴 비틀로 화제를 모았다. 이 형태는 후속인 더 비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원은 연속성과 순환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또한, 방향성을 갖고 있되 특정 고정 값에 따른 중요도에 편견이 없다. 위치에 따라 상대적인 값을 예측하기도 좋다. 그래서 순환하는 개념의 기능을 조작하는 장치 디자인으로 인기다. 계기판의 속도계부터 오디오의 볼륨 스위치, 공조장치의 온도나 풍량 조절 스위치 등이 좋은 예다.

나아가 원은 조화롭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직선보다 곡선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자연에서 익숙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사람은 직선형의 디자인을 볼때보다 곡선으로 디자인한 사물을 볼 때 뇌의 전두대피질 영역이 더 많은 활동을 한다. 정서적으로 한층 더 따뜻하고 친근하게 느낀다는 증거다. 

자동차 디자인이 처음부터 매끈하진 않았다. 여명기엔 기능 중심의 딱딱한 모습이었다. 이후 곡선을 더하기 시작했다. 모서리에 날을 세운 디자인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명성을 떨친 자동차는 예외 없이 매끈한 곡면을 자랑한다. 세월이 지나고 유행이 바뀌어도, 동그라미를 향한 우리의 본능적 호감엔 변함이 없다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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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디 TT의 겉모습을 수놓은 원은 실내에서도 수없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