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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편집실 ı photo. 송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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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ring 금호 복합문화공간

 

도시의 원

 

무엇인가를 오래 바라보노라면 쉽사리 기하학을 발견할 수 있다. 연인과 가족의 눈과 코, 귀와 뺨에서 도형을 발견할 수 있듯이. 13세기 건축가 비야르 드 오네쿠르는 사람의 얼굴을 이마에서 눈, 눈에서 코, 그리고 코에서 턱 끝까지 3등분 한 직사각형으로 나누거나 눈코입, 이마, 턱을 이루는 점을 연결해 빛나는 별 모양을 만든 드로잉을 남겼다.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고딕 기둥이나 성찬대도 어렵지 않다. 원과 세모, 네모가 겹치는 것뿐이다. 건축가 장윤규를 만났다. 그는 “기하학의 본질에서 사회의 본질을 찾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는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쉼 없이 본질을 탐구하고, 그 본질로부터 새로운 물을 길어 올린다.

 

 

건축설계사무소 ‘운생동’
장윤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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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운생동 대표
현 갤러리정미소 대표
현 국민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 건축학 석사
서울대학교 건축학 학사

 

 

공간의 본질을 고민해야
변혁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

 

실험적인 건축가 장윤규. 그의 건축은 매번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이름 석 자를 해외에까지 널리 알린 계기가 된 건축물 ‘예화랑’은 건물의 ‘스킨’, 즉 외관을 고민한 결과다. 흔히 외관이라면 건물의 안과 밖을 분리하는 경계선처럼 활용되지만, 그는 고정관념에 물음표를 던졌다. 경계선이 꼭 필요한지, 면과 면 사이를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면 어떨지. 그 결과 2차원의 면이 3차원의 공간을 만들어낸 건축물이 탄생했다.

“지금껏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해 왔어요. 매번 처음부터 다시 바탕을 세워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니지요. 사무실을 짓는다고 가정하면 먼저 기존의 사무실을 조사하는 게 아니라, ‘사무실’이라는 공간의 본질부터 바라봐야 합니다. 물론 이미 알고 있는 요소에서 시작하면 수월하지만 변혁을 이룰 기회를 놓칠 수 있어요. 모름지기 건축가라면 공간이 사람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어떤 의미로 작용해야 하는지 고찰해야 하는 이유예요.”
그의 방식을 따르자면 독창성은 효율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한 건물이 완성되면 그 건물의 전형을 싹 다 버리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마다 형태를 다르게 하거나 재료를 바꿔가며 매번 새로운 걸 찾아 나서야 하기에 어렵다. 이런 과정에서 일정한 패턴이 생기기도 하지만 공간의 개념을 새로운 곳에 얹거나 기존에 작업했던 디테일을 덧붙여보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1에 1을 더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장윤규 건축가의 독특한 아이디어의 원천은 무엇일까.

“제 삶은 곧 건축입니다. 무엇을 하든 건축을 생각하니까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것도 놓치지 않아요. 일상에서 찾아낸 요소를 프로젝트와 접목해서 머릿속에 정리해 둡니다. ‘미리 영감을 축적한다’고 얘기할 수 있겠네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한 영감은 프로젝트를 만났을 때 단숨에 펼쳐진다. 사전을 펴고 원하는 단어를 찾아 활용하는 것처럼.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발견하는 방법은 장윤규 건축가 특유의 ‘사전식 사고방식’에 있다. ‘서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묻던 장윤규 건축가는 자신은 서울을 만 개로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말을 이었다. 여러 각도에서 스펙트럼을 잘게 쪼개어 바라보면 열 개가 만 개가 될 수도, 만 개가 십만 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한한 스펙트럼에 프로젝트의 단면을 대입할 때 새로운 결과물이 도출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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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심 물 문화관

 

 

원, 빛을 가운데로
모으는 힘

 

‘독창성’이란 어휘를 이미지화하면 이런 모양일까. 장윤규 건축가가 설계한 청심 물 문화관은 공간의 개념부터 새롭게 정의한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흔히 혐오시설로 인식된 오수 정화 시설이라는 공간. 혐오시설이라면 무릇 숨기기 바쁠 테지만 그는 오히려 ‘개방’을 택했다.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공간으로 변화시켜 보자는 단초에서 시작했다. 오수 정화 시설이라면 보통 거대한 장비를 벽으로 가린 잿빛의 칙칙한 공간을 떠올리게 십상이다. 하지만 장윤규 건축가의 오수 정화 시설은 그 자체로 근사한 조형물이자, ‘물’이란 존재를 흥미롭게 체험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이다.
건물 표면의 창을 통해 드러나는 내부는 정말 놀랍다. 마치 깊은 땅속의 물의 흐름을 보는 것 같다. 소박한 연못의 다리를 건너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 물안개를 연상시키는 스모그 글래스, 천장에서 쏟아지는 물, 풀 내음 물씬한 수생식물 체험장. 실내에 조성된 ‘물 환경’ 안에서 사람들은 난생처음 물과 깊게 교감한다. 오수 정화 시설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는 ‘물’ 이라는 주제가 가장 근원적이고 순수한 결정체라는 점에 몰두했다. 가장 원초적 기하학 요소인 원, 찌그러지지 않은 완벽한 원의 형태로 물의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렇게 ‘생명이 순환한다는 진리’에 ‘원의 모양’을 연결 지은 청심 물 문화관이 탄생했다. 대치동에 위치한 금호 복합문화공간 ‘크링’에서도 원을 찾아볼 수 있다. 건물 전면에 겹쳐진 여러 개의 원은 생동감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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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Yeosu EXPO Hyundai Motor Group Pavi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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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 생능출판사 <Life & Power Press>

 

“크링 건물 전면의 입체적인 원이 건물 내부를 관통하는 원통형 공간이 됩니다. 그 원은 자연과 생활, 도시의 다양한 요소가 공명하는 울림통과 같아요. 그 울림통을 통해 ‘사람들의 꿈’이 뻗어 나오는 걸 의도하고 싶었어요. 건물 외벽 원의 파동을 타고 꿈이 세상에 널리 퍼지는 느낌으로요.”
그의 건축에서 원은 어떤 의미일까. 건물을 원형으로 만들면 공사가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 보통 콘크리트 거푸집을 나무로 만드는데 원형은 철판을 씌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숙하고 따뜻한 느낌과 독특한 느낌을 동시에 주는 원을 건축에 활용하면 사람들이 흥미롭게 받아들인다.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것, 원이 담고 있는 놀라운 힘이다. 원의 어느 지점에서든 중심에 이르는 거리는 모두 같다. 그래서인지 원에는 조화와 협업의 기운이 흐른다.

“그리스 신전 판테온에도 완벽한 원의 형태가 있어요. 원 안으로 떨어지는 빛을 중심으로 모으는 힘이 있죠. 또 원은 모두에게 동등한 권한을 주는 평등의 의미를 담기도 하고요. 하나로 규정할 수 없지만 제 사전에 원의 정의는 수만 개가 담겨 있습니다.”

 

 

건축은 사람을 잇는다,
세상을 넓힌다

 

관공서는 딱딱하고 폐쇄적이다? 아니다. 장윤규 건축가가 만드는 관공서는 시민을 감싸 안는다. 기존 관공서가 공공 업무를 처리하는 장소의 ‘기능’만 강조했다면, 그는 ‘시민이 주인이 되는 열린 공간’으로써의 관공서를 꿈꾼다. 성동구에 새로 지어진 성수문화복지회관의 율동적인 사선에서는 힘찬 에너지가 솟아오른다. 여러 방향으로 뻗은 기하학적 모양의 계단, 그 계단 사이에서 자라는 담쟁이덩굴,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햇빛. 구조와 자연이 어우러진 덕에 성수문화복지회관은 계절에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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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수문화복지회관


“건물을 둘러싸며 올라가는 계단은 건물 1층의 입구부터 연장되는 ‘길’이자 ‘광장’의 개념으로 설계했어요. 시민의 공간이라면 구조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광장처럼 누구나 언제나 마음껏 들락날락할 수 있게요. 문을 여러 개 달아서 개방성을 강조하고, 사방에 길을 내어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도록 했습니다.”
좁다란 골목 사이, 용달차의 경적과 기계 소리가 시끄러웠던 곳. 그야말로 삭막한 공장 지대였던 성동구는 재미있는 건물 하나로 분위기가 단숨에 바뀌었다.

“주변이 어둡다고 새로 짓는 건물도 음울할 필요는 없죠. 프랭키 게리가 설계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스페인의 공업 도시 빌바오를 바꿨듯, 이 건물도 주변 풍경을 변화시키는 시작점이 되리라 믿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지 않아 ‘들어가기 어색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성수문화복지회관 덕에 주변 공기마저 쾌활해졌다. “건축에 ‘컨텍스트’라는 개념이 있어요. 건물을 지을 때 주변 환경을 고려해서 건축할 의무 같은 것인데, 보통 색이나 재료, 형태를 맞추려는 개념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컨텍스트’의 개념을 좀 더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요소만 생각할 게 아니라, 공간의 역할에서 이어지는 맥락을 살펴봐야 하거든요. 형태와 의미를 모두 고려한 컨텍스트를 이루면 이질적인 듯했던 공간이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변화를 꾀해요. 성수문화복지회관이 들어선 후 상권도 살아나고 유동인구도 늘어났듯이요.”
본질을 꿰뚫는 맥락에는 원이 파동을 이루듯 주변으로 서서히 퍼져 나가는 힘이 깃들어 있다. 장윤규 건축가는 무엇보다 사회의 본질에 대해 깊게 고민한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이고 인간다운 삶인지에 대한 윤리적 고민이 건축물에 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삶을 통찰하다 보면 결국 ‘윤리’라는 주제에 이르게 됩니다. 윤리는 혼자만의 성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도시의 건축이 윤리를 향해 갈 때 많은 사람을 품는 공간으로 새로이 태어날 수 있겠죠.”
오늘도 그는 공간의 의미를 붙들고 고뇌를 거듭한다. 그 고민은 원형의 바퀴가 되어 구른다. 도미노를 펼치듯 세상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다. 건축가 장윤규가 짓는 도시의 원이자, 세상의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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