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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이한진 _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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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판테온의 천장

 

 

원, 그리고
인류 문명의

함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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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대형강입자가속기 / 사진 출처_ Flickr

 

인류 문명과 함께
진화해온 ‘원’

 

세계에서 거대하다고 손꼽히는 실험실 중 하나는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 근처에 있는 대형강입자가속기(Large Hadron Collider)라는 시설일 것이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주관하여 10년에 걸쳐 100개 국에서 온 1만 명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건설한 이 시설은 둘레가 27km나 되는 원 모양을 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 시설을 통해 빠른 속도로 분자들을 가속시켜 서로 충돌하게 만든 다음 깨어진 원자핵에서 물질의 근본인 소립자의 성질을 이해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런데 입자가속기는 왜 원 모양일까? 인류는 아주 먼 옛날 원 운동이 물체를 효과적으로 가속시키는 한 방법임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돌멩이를 끈에 매달아 손에 잡고 빠른 속도로 회전시킴으로써 원하는 속도만큼 돌멩이를 가속시킬 수 있었다. 이는 사냥꾼들에게는 아주 효과적인 무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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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거석군, 스톤헨지

 

원을 하나의 기하학적 대상으로 탐구하게 된 계기는 확실치 않다. 건축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알려진 ‘스톤헨지’는 일련의 돌기둥이 원형으로 세워져 있는 구조물이다. 고대인들은 일찍부터 원이라는 형태를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170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이집트의 ‘린트 파피루스’에는 원주율의 값을 구하는 문제가 있다. 원의 면적 또는 원 둘레를 계산해야 하는 실제적인 문제에 있어 원주율 값을 아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이집트인들은 원을 정사각형으로 근사하여 정사각형의 면적으로부터 원의 면적을 구할 수 있었다. 고대 중국인들의 원에 대한 관심은 천문학에서 출발한다. 우주에 대한 최초의 모델은 ‘개천설(蓋天設)’이라고 불리는 이론이다. 하늘의 모양을 삿갓을 덮어 놓은 것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어떤 중심이 있어서 그 주변으로 별들이 회전하고 있는 것으로 하늘을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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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린트 파피루스

 

 

기하학
관점에서의 ‘원’

 

원이 기하학의 주 대상이 된 것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의 저술 <원론>을 통해서다. 유클리드는 평면기하학을 자와 컴퍼스만을 사용하여 구성했다. 컴퍼스는 원을 그리는 도구이지만 컴퍼스의 주 역할은 길이를 옮기는 것이다. 컴퍼스를 사용하여 원을 작도하는 것은 이후 하나의 상징으로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13세기 그림에는 창조주가 컴퍼스로 우주를 창조하는 것을 묘사한 그림도 있다. 기하학적으로 원을 다루게 되면서부터 원은 여러 곳에서 다양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2세기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통상 ‘천동설’이라고 불리는 우주론을 제시했는데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 및 여러 행성의 궤도를 여러 개의 중첩원으로 표현했다. 항해에 있어서 중요한 지도에서도 원의 사용을 발견할 수 있다. 17세기 제라르 반샤겐이라는 네덜란드 지도 제작자가 만든 세계 지도는 네 개의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우의 큰 두 원 중 한쪽에는 남미와 북미가, 다른 한쪽에는 아프리카와 유럽, 아시아가 그려져 있다. 위의 작은 원에는 북극이, 아래의 작은 원에는 남극이 그려져 있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를 표현하는 데 단 4개의 원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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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클리드 <원론>

 

중세 고딕성당은 다양하게 원을 사용함으로써 여러 상징적 의미를 표현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로즈 윈도우’라고 불리는 커다란 원형 창이다. 로즈는 ‘바퀴’이라는 뜻으로 성경에 기록된 바퀴의 이미지에 기원을 두며 보통 12개의 꽃잎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표적 고딕성당인 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의 입구에서 전형적인 로즈 윈도우를 볼 수 있다. 원형 창 안에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연습문제라고 불릴 수 있는 흥미로운 기하학적 구성이 가득하다. 이 중 대표적 것이 삼엽문양(Trefoil)이다. 원 세 개를 서로 접하게 작도하여 내부를 지우면 얻게 되는 이 문양은 클로버 잎을 연상시킨다. 고딕 성당의 삼엽문양은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즐겨 사용되었다. 삼엽문양은 오늘날의 디자인에서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노란 바탕에 세 개의 검은색 원호가 그려진 문양은 방사능물질의 위험을 경고하는 사인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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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르트르 대성당의 로즈 윈도우

 

고딕성당만이 원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건축적 예는 아니다. 건축의 전범이라 할 수 있는 고대 로마 역시 건축에 원을 즐겨 사용하였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콜로세움과 같은 원형 경기장이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로마의 대표적 건축물 판테온은 실내에서 아름다운 원형 돔의 천장을 볼 수 있다.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원형 돔은 우주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초월적인 어떤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원', 여러 분야에서
영감의 원천이 되다

 

현대 건축에도 원은 인기 있는 모티브일까?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건물은 독특한 외관으로 유명하다. 이 건물은 외부와 내부가 나선형으로 되어 있다. 미술관 관람객들은 나선형의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서 작품을 볼 수 있고 마지막에 자연스럽게 꼭대기 층에 이르도록 되어 있다. 복도를 걷다 보면 처음의 위치로 돌아온다. 그러나 원 위에서 조금씩 회전할 때 마다 같은 크기로 고도가 조금씩 높아지기 때문에 한 바퀴 돌았을 때 처음 지점에서 수직 방향으로 어느 정도 이동한 거리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나선의 아이디어’인데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축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나선의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 미학적 대칭성과 건물의 기능성을 동시에 성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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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앞서 언급했듯이 원에 관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든 기하학적 구성은 사실상 유클리드의 <원론>에 근거하고 있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2천 년 가까이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유클리드 기하학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 체계에서 가정하고 있는 한 부분이 사람들을 계속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마침내 19세기 수학자들은 문제가 되는 가정을 다른 가정으로 바꿀 수 있음을 발견하고 결과적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이 유일한 기하학이 아님을 깨달았다. 한 예로 ‘푸앵카레 모델’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하나의 원 내부에서만 기하학을 생각한다. 이 원에서 직선이란 원의 중심을 지나는 직선이거나 두 점을 연결하는 어떤 원호의 일부이다. 이때 흥미로운 일이 발생하는데 주어진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면서 이 직선과 평행한 직선이 무한히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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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매맞춤 기법을 사용한 패턴

 

20세기의 네덜란드의 판화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는 이 독특한 원에 큰 영감을 받아 유한한 원 안에 무한을 표현했다.

‘서클 리미트(Circle Limit) 연작’으로 불리는 이 작품 중 하나는 원 한복판에 세 마리의 박쥐와 세 명의 천사가 육각형을 이루고 있다. 다시 더 많은 박쥐와 천사가 계속 육각형을 이루면서 원의 중심에서 멀어져 가는데 원의 가장 자리로 갈 때 무수히 많은 박쥐와 천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푸앵카레 원의 ‘쪽매맞춤(Tessellation)’이라는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쪽매맞춤은 고대로부터 바닥이나 벽을 타일로 장식하던 기법이다. 동일한 모양의 육각형의 타일을 사용하여 바닥 전체를 덮는 것이 가능하다.

에셔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이용하여 유한한 원 안에 예술적 대칭과 무한이라는 개념을 절묘하게 융합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원은 오늘날에도 여러 분야에서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요즘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인공지능 ‘홈비서’의 디자인을 보자. 왜 하나같이 원기둥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일까? 원기둥의 단면은 원이다. 따라서 회전에 대한 대칭을 갖고 있다. 미학적 안정성도 있겠지만 어떤 방향에서 보아도 동일하다. 홈비서는 가족의 어떤 구성원에게도 차별 없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능력을 디자인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구조적인 이유도 있다. 기둥을 만든다면 여러 가지 모양이 가능하겠지만, 원기둥은 높이를 고정했을 때 동일 겉면적을 갖는 기둥 중 부피가 가장 큰 기둥이다. 다시 말하면 내용물이 확정되었을 때 외형의 제작비가 가장 적게 드는 것이 원기둥인 것이다. 원은 가장 근본적인 기하학적 대상이기에 인류 역사상 수없이 다양한 맥락에서 상징의 도구였으며 여러 공학적 상황에서 최적의 해법이 되었다. 21세기에도 원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Book Info.

 

수학은 어떻게
예술이 되었는가

저자 _ 이한진 / 출판사 _ 컬처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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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특히 기하학이 본래의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발전하는 동시에 거기서 발견된 수학적 아이디어가 어떻게 다른 분야로 연결되는지 알아본다. 문명이 발전하는 데 수학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수학이라는 도구 또는 관점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했는지를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