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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편집실 Photo. 이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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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개척정신으로

남들이 가지 않는 

험한 길을 간다

 

거벽 등반가

박정헌 대장

 

1971 경남 사천 출생

1989 초오유 동계 남동벽 등반

1994 안나푸르나 남벽 등정

1995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 체육훈장 백마장

1996 초오유 등정, 시샤팡마 중앙봉 등정

1997 낭가파르밧 등정

1999 K2 토모체센 루트 등반

2000 K2 남남동릉 무산소 등정

2002 시샤팡마 남서벽 신루트 등정

2005 촐라체 북벽 등정

2006 체육훈장 맹호장

현재 예티 클라이밍 짐 대표,

‘지구별 탐험가’ (유튜브 youtu.be/VQo-8QFTjkY) 콘텐츠 운영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가파르고 위험한 산길만 찾는 이가 있다. 공기도 희박하고 빙하와 고독뿐인 거벽과 사투를 벌이며 정복해온 박정헌 대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K2 남남동릉을 무산소로 등정하고, 시샤팡마 남서벽의 신루트를 개척하며, 죽음을 넘어 기적 같은 생환의 기록을 남긴 촐라체 북벽 등정까지. 손가락 8개를 잃는 큰 부상에도 불구하고 실크로드 자전거 횡단과 히말라야 세계 최초 패러글라이딩 횡단 등 새로운 도전의 역사를 쓰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다.

 

 

히말라야에서 실현한 마도로스의 꿈

높은 고도에서 고난도의 거벽을 넘는 것은 누구도 쉽게 도전하기 힘든 일이다. 눈 쌓인 히말라야와 푸른 하늘과 맞닿아 있는 거벽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유는 어쩌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극한의 위험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정헌 대장은 발밑에 도사린 위험보다는 거벽 너머의 아름다움을 향해 걸었다.

“처음부터 고산 거벽만을 등정했던 것은 아니에요. 18세에 선배들에 이끌려 히말라야에 오르게 되면서 산에 눈을 뜨게 되었고, 남들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생각에서 거벽 등반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무작정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어렵고 험준한 코스에 도전하는 일이 훨씬 의미가 있다고 느꼈으니까요.”

돌아보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산과 인연이 깊었다. 경남 사천의 바닷가 출신이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바닷가에서 헤엄을 치기보다 집 근처에 있는 와룡산 바위에 오르길 좋아했던것. 중학교 때 삼천포산악회에서 활동하며 높은 산의 바위 오르기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산악인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고향에서 고깃배를 타고 생업을 이어가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아왔기 때문일까. 그는 막연하게 외항선을 타며 전 세계를 누비는 마도로스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엔 고향을 떠나 부산선원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바위와의 질긴 인연을 끊지 못해 매주 산을 찾았다. 등반가가 되기엔 아직 어린 나이에 전문 산악인과 겨뤄도 부족함이 없는 실력을 갖춰 전국암벽등반대회에서 4위에 입상하기도 했다. 인수봉 연장 등반을 비롯해 우리나라 최대 빙폭인 설악산 토왕폭을 완등했던 것도 그 시절이었다. 한눈에 재능을 알아본 선배들은 18세에 불과했던 그를 히말라야 초오유 원정에 데리고 갔다. 비록 히말라야 첫 등반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가장 어렵다는 남동벽 코스를 오르면서 느낀 희열과 고통은 다음 도전을 향한 열망을 갖게 해주었다. 군 복무를 마친 그는 히말라야 3대 난벽 가운데 하나인 안나푸르나 남벽 등정에 나섰다. 경남연맹 원정대원 가운데 유일하게 정상에 오르기는 했지만, 현지인 셰르파와 함께 했던 등반이었기 때문에 절반의 성공이었다. 안나푸르나 남벽 원정 이후 그는 등반 실력을 높이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1년 후인 1995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에서 그는 가장 앞장서서 어려운 코스들을 돌파해나갔고,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의 쾌거를 이뤘다.

 

 

촐라체를 넘어 미래의 이정표를 그리다

히말라야 거벽을 오르는 과정은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숨 가쁘고 아찔한 순간의 연속이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크레바스에 빠지기도 하고, 등반을 함께 해온 동료가 눈사태로 갑자기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위험은 그저 감수해야 하는 일로 여겨졌다.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 이후 그는 히말라야 거벽 등반에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K2 남남동릉 무산소 등정, 시샤팡마 남서벽 신루트 등정, 가셔브룸 2봉 남남동릉 등정까지. 그의 행보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찬사가 쏟아졌지만 정작 그는 그런 성과에 연연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이 기록을 업적으로 남길 때 그는 산 너머 산을 보았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등정 기록은 2005년 촐라체 북벽 등반을 끝으로 잠시 멈추게 된다. ‘히말라야의 난공불락’으로 불리는 이 거벽은 등반이 시작되는 해발 4,900m 지점 에서 정상까지 고도차가 1,500m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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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로프와 여러 개의 캠프를 설치하며 올라도 등정하기 어려운 이곳을 그는 후배와 함께 고군분투하며 수직의 거벽을 타고 넘었다. 베이스캠프를 출발한 지 나흘 만에 촐라체 정상에 섰지만, 하산 도중 후배가 커다란 얼음 틈 사이로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를 묶고 있던 줄이 몸을 휘감으며 갈비뼈가 으스러졌다. 손에 동상을 입은 상태에서 두 다리가 모두 부러져 걸을 수 없는 후배를 살려내기 위해 끝까지 사투를 벌였다.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건져내려면 자일을 끊어야 하지만, 그는 두 사람을 연결한 끈을 풀지 않고 후배를 살려냈다. 이틀 밤을 노지에서 보낸 후 히말라야를 빠져 나왔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동상을 입은 손가락 여덟 개와 발가락 일부를 잘라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뭉툭해진 손을 먼저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해맑게 웃는다.

“에베레스트와 K2, 안나푸르나에 올랐을 때는 하나의 산밖에 볼 수가 없었어요. 그때 올랐던 정상 하나밖에는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죠. 하지만 촐라체 북벽을 등정했을 때는 앞으로 내가 올라야 할 모든 산들이 보였어요. 눈앞에 놓여있는 삶의 고비들과 앞으로 개척해나가야 하는 수많은 길들까지도요. 가장 넘기 어려운 산을 넘었기 때문에 나의 미래도 뚜렷하게 그려볼 수 있었죠.”

사고 이후 예전처럼 산을 오를 수 없게 되었을 때 좌절하기도 하고, 우울한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는 훌훌 털고 일어나 남들이 도전하기 어려운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삶의 위기는 새로운 도전을 위한 디딤돌

촐라체 등정 이듬해 그는 유라시아 횡단팀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중국을 가로질러 파키스탄까지 연결되는 실크로드를 동그란 바퀴 두 개로 정복했다. 앞을 가눌 수 없는 비바람과 온몸의 구멍으로 스며드는 모래 바람을 이겨내며 새로운 개척을 꿈꿨다.

“촐라체에서 얻은 교훈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거벽은 장애물이나 한계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향한 도전이자 삶을 바꾸는 혁신이라는 것을요.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직장인과 기업인들, 꿈을 향한 모험을 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히말라야 등반 이야기가 동기부여를 해주고, 열정을 되살리는 불꽃이 되길 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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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그는 등산을 학문으로 체계화시키는 작업도 차근차근 진행시켜나갔다. 등산이 무모한 행위가 아님을 논리적인 언어로 정리해 알리고 싶었다. 또한 패러글라이딩으로 히말라야를 횡단하는 도전을 비롯해 카약과 자전거, 산악스키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2년 전에는 진주종합경기장에 ‘예티 클라이밍 짐’을 오픈해 암벽 등반에 도전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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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이후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두 번째 인생에 감사한다. 남들이 하지 못했던 색다른 방식으로 미래를 개척해나갈 수 있는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가셔브룸을 등반할 때 패러글라이딩으로 하산하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적이 있어요. 걷거나 비행기를 타면서 느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전율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히말라야 산맥 크로스컨트리 비행은 많은 위험이 도사리는 모험이지만 비행을 접목한 등반으로 히말라야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싶어요.”

촐라체 등정 과정에서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그는 인도 히말라야의 탈레이사가르, 눕체 북서벽 등 아직 정복하지 못한 곳을 향해 계속 전진하며 새로운 신화를 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낭떠러지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욕망을 내려놓고 산에서 내려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라고 여긴다. 앞으로 그는 지구를 대상으로 한 흥미진진한 탐험을 계획하고 있다. ‘지구별 탐험가’가 되어 패러글라이딩, 카약, 자전거 산악스키 등 익스트림한 스포츠를 이용해 일반인들이 할 수 없었던 이색적인 지구 오지 탐험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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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벽 등정을 할 때 고독함을 즐겼다면 이젠 창조적인 도전과 모험을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다양한 체험을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그는 직접 영상 제작 작업에 참여하여 유튜브(youtu.be/VQo-8QFTjkY)를 통한 홍보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 도전에도 전제는 동일하다.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 것’. 또한 ‘다른 이들이 하지 않았던 창의적 방법으로 즐거운 도전을 하는 것’이다. 앞으로 그가 개척해나가는 새로운 길이 끊임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처럼 무한한 창조의 에너지가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