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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 Inside

writer. 김형준 _<모터트렌드> 편집장

자동차
스타일의 진화

 

쿠페 디자인

 

‘고정된 지붕을 갖추고 있고, 일반 승용차보다 길이가 짧으며, 승객 2명을 태울 수 있는(혹은 뒤쪽에 보조 의자를 갖춘) 자동차’. 이는 쿠페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다소 딱딱하게 들린다면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도 있다. ‘지붕선이 매끄럽게 호(弧)를 그리는 날렵한 2인승 혹은 2+2인승 자동차’. 쿠페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인상은 대체로 ‘날렵한’, ‘멋진’ 등의 수식어로 갈음되기에 십상이다. 자동차 역사를 되짚어보면 조금 더 이해가 쉽다. 쿠페는 태생부터가 멋지고 날렵한 자동차였다.

 

 

쿠페의 기원

 

세상 모든 자동차가 그렇듯 쿠페의 기원은 마차(Carriage)에 있다. 소위 세단이나 리무진으로 분류하는 승용차는 코치(Coach)라 불린 마차에서 비롯했다. 마주 보는 의자가 앞뒤로 배치된 상자형 객실이 특징이었다. 이후 17세기 무렵에 베를리네(Berline)라고 하는 마차가 등장했다.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 프레데릭 빌리암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앞뒤로 마주 보는 의자가 하나씩 있는 2인용 객실이 특징이었다. 프레데릭 선제후는 우아하게 꾸며진 그 장거리 여행용 마차를 타고 베를린에서 파리까지 이동했고 사람들은 출발지(베를린) 명칭에 기인해 그 마차를 베를리네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베를리네는 장거리 여행에 적합한 고급 이동수단, 즉 그랜드투어링(GT) 카로 발전했다.
베를리네는 전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고 이윽고 이를 변형한 소형 운송수단 쿠페가 등장했다. 쿠페(Coupe)의 어원은 자르다(Cut)라는 뜻의 프랑스어쿠퍼(Couper)에 있다. 베를리네의 객실에서 뒤보기 방향으로 놓인 앞자리 의자를 떼어내고 객실 크기를 줄인 단거리 이동용 소형 마차가 바로 쿠페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초기엔 베를리네 쿠페(Berline Coupe, 반 토막짜리 베를리네)로 불렸고 시간이 흘러 지금의 쿠페로 굳어졌다.
자동차의 시대로 넘어와서도 쿠페 형태는 이어졌다. 운전자가 객실 밖 의자에 앉고 승객은 객실 안쪽에 놓인(앞을 보는) 2인용 의자에 앉는 구조였다. 이후 운전자가 객실에 앉는 일반적인 차 형태가 굳어지면서 미국자동차기술학회(Society of Automobile Enginners, SAE)는 쿠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렸다. ‘실내에서 조작하는 2인용 또는 3인용 밀폐형 자동차’.

 

 

동경의 대상이 된
쿠페 디자인

 

쿠페는 형태의 특성상 오랜 기간 ‘개인용 이동수단’ 으로 기능해왔다. 그리고 크기가 작고 가볍다는 특징을 살려 운동성능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쿠페=스포츠카’라는 인식이 생겨난 배경이다. 스타일이 뛰어나고 잘 달리는 자동차로 발전한 쿠페는 머잖아 동경의 대상이 됐다. 평범한 이동수단으로 세단을 보유한 사람에게도, 범인(凡人)과 차별되는 특별한 자동차 소유를 원한 부유층에게도, 그리고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독특한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하는 자동차 제조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승차 인원과 적재공간이 제한적이라 대중에 널리 쓰이기 어려웠고 당연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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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 폰티액 아즈텍 콘셉트


그럼에도 쿠페는 시장이 정체되거나 제조사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마다 마치 구원투수처럼 세상에 나타나곤 했다. 물론 순수한 쿠페로서가 아니라 재래식 승용차의 지루한 분위기를 바꾸는 변종, 즉 크로스오버 스타일로서였다. 2000년 미국 폰티액이 내놓은 아즈텍(Aztek)이 대표적이다. 폰티액은 GTO, 트랜스암 등 미국적 머슬카로 유명세를 떨친 브랜드지만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해 점점 도태돼가고 있었다. 폰티액은 1990년대 중반부터 활성화된 SUV 시장과 크로스오버 모델에서 생존의 길을 찾고 그 첨병으로 아즈텍을 앞세웠다. 얼굴은 1970년대 폰티액 전성기의 중심이었던 GTO에서 가져왔다. 소형 SUV라는 점을 강조하듯 휠하우스는 마치 지프의 그것처럼 네모났다. 여기에 쿠페처럼 경사진 뒷유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 모든 게 뒤섞인 스타일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결국 아즈텍에는 생애 내내 ‘최초의 쿠페형 SUV’라는 명예 대신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자동차’라는 멍에가 뒤따랐다.

 

 

날렵한 디자인과
공기역학 극대화 기능의 결합

 

폰티액의 실패는 쿠페 스타일의 단순하고 기계적인 결합에 있었다. 이를 지켜본 다른 제조사들은 스타일이 멋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색다른 차를 찾는 소비자의 마음을 앗아오기 어렵다는 교훈을 얻었다. 활처럼 굽은 지붕 선의 장점은 날렵해 보인다는 심미안적 요소에만 있지 않다. 기능적으로는 공기역학의 극대화라는 이점을 얻을 수 있고 이미지 차원에서는 차별화된 고급스러움이라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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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메르세데스 벤츠 CLS 클래스


전자를 가장 잘 살린 브랜드는 일본 토요타였다. 1997년 최초의 양산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를 선보이면서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쿠페처럼 매끄럽게 흐르는 지붕 선을 접목했다. 효과는 분명했다. 당대 최고의 연료효율을 자랑한 프리우스의 물방울 모양 차체는 머잖아 ‘프리우스 스타일’이라는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매김했다. 쿠페 스타일이 지닌 고급스러움은 2005년 등장한 메르세데스 벤츠 CLS클래스가 완성했다. E 클래스 세단을 토대로 개발한 이 차는 트렁크 뒤끝까지 길게 떨어지는 날렵한 지붕 선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안락한 주행품질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고 이윽고 4도어 쿠페의 전세계적인 유행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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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쌍용자동차 액티언


쿠페라이크(Coupe-like) 실루엣의 붐은 SUV 분야 로도 확산됐다. 출발점은 2005년 쌍용자동차가 선보인 액티언이었다. 영국 RCA 출신 디자이너 켄 그린리가 제안한 액티언 디자인은 그 자체로 파격이었다. 봉긋한 쿠페 지붕으로 갈무리한 SUV 차체가 새로웠고 화살촉처럼 날카로운 헤드램프, 지면을 파고들 듯 경사진 캐릭터라인이 주는 강렬함도 상당했다. 그 스타일에 대해선 파격의 깊이만큼 좋고 싫음이 분명하게 나뉘었다. 하지만 디자인 완성도를 떠나 ‘세상에 둘도 없는’ 쿠페형 SUV 스타일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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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BMW X6


쿠페형 SUV는 2008년 BMW X6를 통해서 비로소 세상에 안착했다. 액티언과 X6의 차이점은 명확한 제품 콘셉트와 파격을 뒷받침하는 기본 모델의 존재 여부에 있었다. 쿠페 지붕을 접목한 SUV라는 점은 X6와 액티언과 다르지 않았지만 BMW는 ‘주행성능’이라는 가치를 얹어 시장을 파고들었다. 주행 역동성은 BMW가 추구해온 브랜드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여기에 X5라는 성공한 SUV 모델의 존재가 X6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재래식 SUV에 가까운 X5가 보편적인 럭셔리 소비자를 상대하는 가운데 X6는 특유의 쿠페 스타일과 강화된 주행성능으로 기존 SUV에 지루함을 느낀 진성 고급 차 고객을 공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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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렉서스 RX 350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두 곳이 각각 세단과 SUV 시장에 쿠페라이크 스타일을 안착시키자 그 밖의 자동차 제조사들도 앞다퉈 이 흐름에 합류했다.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건 역시 SUV 분야였다. 박스형 차체의 단조로움을 지우고 역동적이거나 젊은 이미지를 더하는 데 특히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쿠페 스타일도 단순히 활처럼 굽은 지붕 선에만 그치지 않고 차체 뒤끝 높이를 살짝 낮추거나 옆 창문의 형태에 변화를 주고 지붕이 떠 있는 것처럼(Floating Roof) 보이게끔 기둥(필러)을 검게 처리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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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벤츠 GLC 63 AMG 쿠페


쿠페 스타일은 21세기 자동차 역사를 설명하는 대조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SUV의 영역 확대와 성장 속도로 보건대 그 유행은 앞으로도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붕 뒤끝이 내려앉는 형태로 인해 거주공간(뒷자리)과 적재공간의 손해가 불가피하고 높은 벨트라인 때문에 후방 운전 시야가 비좁아지는 등 제조사가 풀어야 할 숙제도 여전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