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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 Inside

writer. 김형준 _<모터트렌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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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
전성시대

 

SUV의 역사와 진화

 

SUV는 스포트 유틸리티 비클(Sport Utility Vehicle)의 약자다. 문자 그대로 풀어 쓰면 ‘놀이용 다목적 자동차’ 정도겠고, 조금 세련되게 표현하면 ‘레저 스포츠 하러 갈 때 타는 다목적 차’쯤 되겠다. 무엇이 됐건 방점은 ‘다목적’에 찍힌다. 즉 SUV의 핵심은 다양한 목적에 대응할 수 있는 전천후 성격(또는 성능)에 있다.

 

 

시대에 따라
형태를 달리한 SUV

 

‘다목적 차량’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게 SUV이지만 이 같은 특징을 지닌 자동차가 SUV뿐인 건 아니다. 왜건은 화물 적재성을 갖춘 승용차로 역사가 깊고, 유럽에선 왜건의 기능성을 곁들인 그랜드 투어링 카가 슈팅브레이크라는 이름으로 부유층의 인기를 누려왔다. 객실과 적재공간의 자유로운 변형으로 1980년대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미니밴 역시 대표적인 다목적 승용차라고 할 수 있다.
SUV의 역사는 이들에 비하면 짧다. 1990년대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음을 고려하면 미니밴보다 10여 년, 왜건이나 슈팅브레이크보다는 100여 년이나 출발이 늦었다. 하지만 그 성장세나 현재 자동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다목적 승용차도 따를 수 없을 만큼 폭발적이고 거대하다. 단적으로 지난해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SUV가 차지한 비중은 28.8%(약 2,430만 대)에 달했다. 2015년 대비 성장률은 무려 20%에 이른다. 국내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한 해 45만 4,600여 대가 팔리며 승용차 시장에서 34% 가까운 점유율을 기록했다(이에 비해 미니밴은 지난해 전 세계 시장 점유율 8.8%를 보였고 국내 승용차 시장에선 약 6%의 비중을 차지했을 뿐이다). 중요한 사실은 SUV 시장의 성장판이 아직 닫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편차는 있지만 여러 자동차 산업 조사기관은 전 세계 SUV 시장 규모가 2030년경이면 4,200만 대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야말로 SUV 전성시대다.

SUV의 인기 비결은 복합적이다. 우선 성장 과정부터 남달랐다. 뿌리를 찾자면 1940~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의 전장을 누빈 미군 전술차량이었다. 이 군용 전술 차량은 전쟁이 끝난 뒤 미국에서 민수용 모델로 재탄생했다. 1945년 출시한 윌리스 오버랜드 CJ-2A였다. 이 차량은 1949년까지 21만 4,000여 대 생산되며 성공했다. 이후 꾸준히 개선되고 개량되며 1986년까지 생산됐고 지금의 지프 랭글러로 진화했다. 소위 ‘찝차’로 알려진 미군 전술차량은 유럽에서도 SUV 탄생의 씨앗이 됐다. 영국 로버 자동차의 치프 디자이너(모리스 윌크스)가 지프 섀시를 개조해 만든 시제작차(1947년)가 그 시작이었다. 윌크스의 차는 이듬해 암스테르담 모터쇼를 통해 ‘랜드로버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공식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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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클래식


윌리스 CJ 시리즈와 랜드로버는 농경지나 목장, 산업현장 등에 적합한 ‘작업용’ 자동차로 제 기능을 톡톡히 했다. 즉 민수용이라고는 해도 일반 승용차로 쓰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두 차가 지닌 구조적인 특징인 사다리꼴 프레임 섀시와 4WD 구동계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SUV 설계의 매뉴얼로 기능했다. 물론 당시에는 SUV라는 표현도 존재하지 않았다. 4X4 자동차가 흔했고 오프로드 자동차나 4WD 카, 경우에 따라서는 크로스컨트리 모델 등의 표현이 사용됐다.
군용차에 가까웠던 4X4 자동차는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지금의 SUV와 비슷한 형태를 갖추게 됐다. 개념은 간단했다. 험로주파 성능이 장점인 4X4에 스테이션 왜건의 껍데기를 씌우는 것이었다. 초창기의 4X4 왜건은 차체 뒤쪽을 길게 뺀 단순한 형태였다. 윌리스 지프가 1940년대 중반부터 판매한 윌리스 지프 스테이션 왜건이 대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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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 지프 체로키


(SUV에 가까운) 현대적인 형태의 4X4 왜건은 1960년대 초에 선보인다. 윌리스 지프 스테이션 왜건을 대체한 지프 왜고니어였다. 미국에서 인기 있는 픽업트럭 섀시에 박스형 보디를 얹은 왜고니어는 당시 어떤 4X4 자동차보다 승용차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유럽에선 랜드로버가 이 흐름에 동참했다.
1970년 등장한 1세대 레인지로버는 특유의 오프로드 성능에 고급 승용차를 떠올리는 매끈한 주행품질로 ‘어드벤처 카’의 경계를 허물었다. SUV와 흡사한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도 1970년대였다. 지프는 1974년 왜고니어를 토대로 한 풀사이즈 4X4 왜건 체로키를 선보였고, 이때 체로키 브로셔에 ‘스포트유틸리티(Sport Utility)’라는 표현을 담았다.
4X4 왜건은 1970~80년대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미국인에 인기 있는 픽업트럭을 기반으로 한 차가 대부분이라 시장 내에선 자연스럽게 경트럭(Light Trucks)으로 분류됐다. 이 같은 흐름에 변화가 생긴 건 1990년대였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1970년대부터 강화된 연비와 환경 규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당시 가장 큰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활동하는 제조사는 고충이 더 컸다. 랜드로버는 레인지로버의 미국 판매를 포기했고 프랑스 시트로엥은 아예 시장에서 철수했다. 연비(배기가스)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해 단종되는 차도 속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X4 왜건은 흔들림이 없었다. 승용차보다 완화된 환경 기준을 적용한 미국 정부의 보호(?) 덕분이었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무겁고 연비가 떨어진다는 특징 때문에 4X4 왜건은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다.
미국 밖 제조사들이 묘수를 꺼냈다. 프레임 섀시 대신 승용차의 모노코크 섀시를 적용한 것이다. 일본 제조사들은 소형 승용차를 활용한 자그마한 SUV를 앞세웠다. 1994년 일본과 유럽에서 출시한 토요타 RAV4, 이듬해 일본 생산에 들어간 혼다 CR-V가 대표적이었다. 도심형 SUV의 시조로 불리는 이 제품들은 가볍고 조종성능이 우수했다. 4WD와 FWD의 두 가지 구동계를 갖춘 것도 기존 4X4 왜건과 다른 큰 특징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럭셔리 SUV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의 ML 클래스(1997년)가 포문을 열었고 모노코크 설계의 렉서스 RX(1997년)와 BMW X5(1999년)가 뒤이어 출시됐다. 벤츠와 BMW는 아예 미국에 생산공장을 두고 적극적으로 시장을 공략해갔다.

 

 

점점 더 확대되는
SUV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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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장수 자동차 브랜드 코란도

 

한국 자동차 산업 역시 짧은 역사가 무색하게 빠르게 SUV 영역을 넓혀갔다. 1980년대의 거화 지프와 코란도, 코란도 패밀리 등 전통적인 4X4 시대를 거쳐 1990년대에는 쌍용자동차 무쏘와 현대정공 갤로퍼, 기아 스포티지 등이 등장하면서 세계적 흐름을 뒤쫓았다.

모노코크 섀시와 같은 승용차 기술이 접목되자 SUV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99년 미국 시장에서 경트럭(픽업트럭, 미니밴, SUV)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5년 대비 2배 이상 늘었고, 유럽은 1995년 30만 대였던 SUV 판매량이 1999년 56만 4,000여 대까지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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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 쌍용자동차 무쏘

 

최근의 전 세계 SUV 판매량은 2000년(약 500만 대)의 약 5배에 가깝다. SUV는 20세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의 엘도라도였다.
이후 세상 모든 제조사가 더 큰 수익을 보장하는 SUV 생산에 뛰어들었다. SUV의 탄생을 이끈 이종 간 결합(Crossover)도 더욱 활발해졌다. 그 결과 SUV 시장은 한층 다변화, 다층화됐다. 값싼 소형 모델부터 고가의 대형 럭셔리 모델, 평범한 승용차 같은 SUV부터 전통적인 오프로더나 스포츠카에 버금가는 고성능 SUV까지 그 가짓수는 기존 승용 모델들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많다. 재래식 왜건 보디부터 쿠페나 미니밴의 특징을 접목한 모델과 지붕을 열 수 있는 컨버터블 등 형태의 제약도 사라졌다. SUV의 이유 있는 인기에 전 세계 B~C 세그먼트 소형 세단/해치백 시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작아지고 있다.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저유가 기조, 경량 소재와 다운사이징 파워트레인의 발전, 중국과 인도와 같은 새로운 거대 자동차 시장의 등장 등 그간 전 세계 SUV 시장의 성장을 뒷받침한 요소가 여전해 SUV의 전성시대는 쉽사리 저물지 않을 전망이다. 물론 SUV 제조사가 풀어야 할 당면 과제도 적지 않다.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디젤 엔진을 대신할 전동 파워트레인 개발, 고비용 구조의 생산체계 정비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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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7%의 고장력강판을 적용한 G4 렉스턴의 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