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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최원석 _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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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 판지에 유화, 템페라, 파스텔로 그린 버전.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 보관

 

<절규>를

탄생시킨 화산

 

비명이 그림 밖으로 퍼져 나올 만큼 사람의 표정 묘사가 압권인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의 대표작 <절규(The Scream, 1893)>. 일그러진 사람 얼굴과 함께 핏빛으로 소용돌이치는 저녁놀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뭉크는 사람의 내면에 담긴 고뇌를 표현하려고 이런 저녁놀을 그렸겠지만 공교롭게도 이 저녁놀에는 수많은 사람의 절망과 공포가 담겨 있었다. 뭉크의 <절규> 외에도 당시 화가들의 그림속에 종종 등장한 이 저녁놀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비극을 품은 하늘

 

뭉크가 그린 노을은 보통의 노을보다 훨씬 붉은 핏빛을 띤다. 화가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그림의 배경을 그려 넣는 것은 흔한 일이다. 따라서 뭉크가 상상력을 발휘해 배경을 그려 넣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뭉크의 저녁놀은 절규하는 사람의 배경으로 넣기 위해 단지 노을빛을 과장한 것이 아니다. 뭉크는 10년 전인 1883년 어느 날 저녁 산책을 하던 중 자신이 직접 관찰한 것을 그려 넣은 것이다. 특이하게도 1883년에는 세계 곳곳에서 이런 하늘을 관찰할 수 있었고, 뭉크는 그런 하늘을 관찰한 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독특한 하늘빛은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특히 화가들은 자연이 보여주는 이러한 환상적인 쇼를 화폭에 담았다.

하늘의 장관을 세세하게 기록한 화가로는 영국의 템스강변에 살았던 윌리엄 아스크로프트(William Ascroft)가 손꼽힌다. 그는 1883년부터 3년 동안이나 불타는 저녁놀을 배경으로 한 풍경화를 무려 500점 이상 그렸다. 그의 작품은 마치 파노라마 보는 것 같을 정도다. 유럽의 반대편 미국에서도 평소 보기 어려운 분홍빛과 오렌지빛, 자줏빛이 부드럽게 어우러진 독특한 느낌의 일몰을 볼 수 있었다. 빛을 잘 살려 낭만적으로 미국의 풍경을 그렸던 에드윈 처치(Frederic E. church)가 이런 장관을 놓칠 리 없었다. 그는 온토라오 호수에 펼쳐진 멋진 장관을 <온타리오 호수, 쇼몽 베이 얼음 위의 일몰(Sunset over the Ice on Chaumont Bay, Lake Ontario, 1883)>에 담아낸다.

놀라운 것은 화가들에게 이런 황홀경을 선사한 자연 현상의 원인이 그로부터 수천km 이상 떨어진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토아(Krakatoa, Indonesian: Krakatau)의 화산폭발이었다는 것이다. 1883년 8월의 폭발은 1천km나 떨어진 곳에서도 폭발음이 들릴 정도로 거대했고, 크라카토아에서 분출된 화산재는 성층권을 뚫고 40km 높이까지 솟아올랐다. 성층권으로 올라간 화산재는 수개월 내에 낙하했지만 작은 것들은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 동안 대기의 흐름에 따라 지구의 상공을 떠돌아다녔다. 작은 먼지들은 종단속도가 초속 1mm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느렸기 때문에 편서풍을 타고 지구를 몇 바퀴고 돌 수 있었다. 먼지들은 대기를 통과하는 태양 빛을 산란시켰다. 빛이 산란하는 정도는 대기 중의 입자 크기에 따라 달라졌는데 화산 먼지에 의해서 푸른색 계열의 빛이 더욱 많이 산란하였다. 푸른빛이 많이 산란하고 붉은빛이 더 많이 도달해 핏빛의 저녁놀이 보였던 것이다. 얼마나 하늘빛이 붉었으면 미국의 한 소방서에서는 이것을 보고 불이 난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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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 가장 초기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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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 석판 인쇄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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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 판지에 파스텔로 그린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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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 판지에 파스텔로 그린 버전

 

<절규>와 절규

 

1883년의 분출은 뭉크를 비롯해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그건 진정한 화산의 모습이 아니다. 화산은 <절규>가 아니라 진짜로 인류를 절규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고대 로마의 아름다운 휴양지 폼페이를 순식간에 지옥의 도시로 만들어 버렸듯이 크라카토아도 화산폭발로 1천여 명의 주민을 화산재로 덮어버렸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화산폭발 후 발생한 해일로 무려 3만 5천 명이 넘는 사람이 수장되었다. 화산이 폭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보다 물에 의한 사망자가 더 많았다. 기원전 1620년경의 산토리니 화산폭발 때도 그랬다.

화산폭발 후 생긴 해일로 인해 크레타섬의 미노아 문명은 치명타를 입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아마도 이 사건이 후일 아틀란티스의 전설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화산폭발로 인한 피해는 드물지 않았다. 그런데 19세기에는 세계적으로 거대한 화산폭발이 유독 많았고 그것이 역사의 흐름도 바꿔놓았다. 공포소설의 원조인 메리 쉘리의 《프랑켄슈타인》이나 브람스토커의 《드라큘라》를 보면 19세기의 음침하고 추운 날씨를 느낄 수 있다. 이 소설들의 배경이 되는 날씨를 만들어 낸 것은 인도네시아 숨바와섬의 탐보라 화산이다. 1815년 인류 역사상 최대의 화산폭발로 일컬어지는 탐보라 폭발로 인해 화산재가 햇빛을 막아 지구 전체의 기온이 떨어졌다. 그로 인해 1816년과 1817년은 ‘여름 없는 해’로 기록될 만큼 기온이 낮아졌다. 냉해로 농사는 흉년이 되었고, 수만 명의 사람이 굶어 죽었다. 또한 굶주림으로 면역력이 떨어져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도 셀 수 없이 나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고향과 조국을 등지고 이민을 선택하거나 살기 위해 가혹한 선택을 해야 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버리거나 교회 앞에 두고 도망가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고아원을 배경으로 한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나 자식을 숲속에 내다 버리는 그림형제의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는 당시 서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화산은 19세기에 수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는 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절규> 속에는 진짜 수많은 절규가 담겨있어 그림이 더욱 충격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