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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최원석 _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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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시저를 통해 본

인간의 기준

 

‘원숭이의 행성’에 불시착 한 우주인들의 모험을 다룬 영화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 1968)>. 충격적인 결말로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당시 분장 기술의 한계로 인해 지금 보면 가면 쓴 배우들의 연기가 다소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2011년부터 시작된 리부트 시리즈에서는 특수효과 덕분에 완전 새로운 모습의 유인원들이 등장한다. 놀랍게도 그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느껴진다.

 

 

인간다움의 기준

 

골룸 역으로 호평을 받았던 서키스는 이번에도 시저 역을 거의 완벽할 정도로 잘 소화했다. 인간이 침팬지 역을 한 것이 아니라 침팬지가 인간 역을 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서키스의 뛰어난 연기 덕분에 시저를 통해 유인원에게서 인간성을 엿볼 수 있었고,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기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인간과 동물의 지위가 바뀐다는 상상이 이 영화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동화로 널리 알려진 J.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서는 인간과 말의 위치가 바뀐 후이늠이라는 말 나라가 나온다. 물론 스위프트가 말 나라를 등장시킨 것은 인간사회에 대한 풍자였다. 이와 달리 다윈의 <종의 기원(1859)>은 상상이 아니라 증거를 바탕으로 한 과학책이었다. 다윈은 인간도 다른 동물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는 진화론을 주장했고, 이는 많은 기독교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특별한 지위를 허물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인간화되어 가는 유인원과 퇴화해가는 인간 사이에 교점을 만들어 인간과 유인원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로 인해 관객은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에 빠진다.

흔히 사람들은 인간다움을 합리성이나 창의성, 도덕성과 같은 것이라 여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고차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동물이 생존을 위한 단순한 본능적 판단을 하는데 비해 인간은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고 믿었다. 물론 옳은 주장이다. 그러나 어떤 뇌 과학자들은 인간은 합리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자신의 선택을 합리적으로 바꾸는 능력이 뛰어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도 지극히 감정적인 동물이며, 합리적인 판단과 거리가 먼 행동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곰곰이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보라. 순간의 감정이나 잘못된 판단으로 후회한 경험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을 이용할 줄 안다.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인공지능에 의견을 구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게 그 예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로보어드바이저가 자산관리를 해주고 있으며, 창의성을 요하는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1.2%의 생물학적 차이를

넘어서는 도덕적 근본

 

영화에서 시저를 따르는 유인원 무리는 서로를 아끼고 무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도덕성과 사회성을 지닌 존재로 묘사된다. 혹자들은 이 유인원 무리가 대령 휘하에 있는 군인보다 ‘인간적’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이 묘사는 영화상에서 유인원이 인간으로 진화(이것은 과학적 의미의 진화개념이 아니라 진보의 의미이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에 따르면 침팬지나 보노보 같은 유인원 무리도 나름의 도덕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도 아무런 대가 없이 동료를 돌보기도 하고, 잘못한 녀석을 응징하는 등의 행동을 한다. 영화 속에서 시저가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라고 외치며 유인원의 도덕성과 사회성을 강조했던 것이 결코 허구만은 아니라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인원의 도덕적 행동을 많은 사람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인 것은 인간다운 위대함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이타심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적 차이는 단 1.2% 정도라고 한다. 영화 속 시저의 모습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실제로도 침팬지와 인간의 유사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것이 외모뿐 아니라 도덕성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과 유사한 침팬지 연구를 통해 우리는 거꾸로 인간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침팬지를 연구한 학자드 발이 <침팬지 폴리틱스>에서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에 대해, <착한 인류>에서는 도덕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선한 동물이며, 도덕이 종교적 가르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한 본성을 지닌 덕분에 생겨난 것이라는 주장에 쉽게 동의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수없이 일어난 전쟁뿐 아니라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강력 사건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분명 인류는 꾸준히 도덕을 진보시킬 만큼 이타적이다. 따라서 가장 선한 것이 도덕적인 인류의 구분 기준만이 아니라 과학적인 측면에서도 인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인간은 다른 유인원 사촌들보다 좀 더 합리적이며, 뛰어난 창의성과 도덕성을 지니고 있는 그런 존재다.